그들이 있어 한국영화 미래는 밝다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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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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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다가 얼떨결에 함께 찍게 됐어요. 영화를 끝까지 찍게 될 줄도 몰랐지만 이렇게 잘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연출부 장선희·27)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극장.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기자시사회에 앞서 진행된 무대인사에는 무려 10명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 20대인 배우와 제작진의 소감은 프로들의 준비된 ‘멘트’와 달리, 너무 어수룩해서 되레 신선했다. 이 영화가 첫 출연이라는 서장원(22) 씨는 “감독이 ‘머리를 자를 수 있느냐’고 어느 날 물어 와서 그냥 ‘머리를 자를 수 있다’고 했더니 출연이 결정됐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 내 억압 문제를 다루며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폭압적 남성성을 비판한 영화다. 윤종빈(26) 감독이 올해 2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면서 만든, 이른바 ‘졸업 작품’이다. 감독의 개인 돈 500만 원을 포함해 총제작비 2000만 원이 들어간 초저예산 영화로 감독과 대학 선후배 사이인 ‘아마추어급’ 스태프와 배우들이 전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경호실 직원으로 출연 중인 하정우(27)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난생 첫 영화였다. 제작-연출-연기, 촬영-각색, 연출부-의상-소품 등 1인 2역 내지는 1인 3역을 맡았고, ‘밥값’을 아끼려고 촬영장소도 각자 물색하러 다녔다. 모두 “내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 아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작품’에 매달렸다.

제작비가 모자라 HD급 촬영장비가 아닌, 일반 가정용 디지털캠코더로 촬영됐다. 극장용 대형 스크린으로 옮겨놓으니, 등장인물의 이목구비가 흐릿해 보일 정도로 ‘가난의 그림자’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프로’ 뺨치는 연기와 연출력, 안정되면서도 도전적인 촬영과 편집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관객을 때론 웃겼다가 어느 순간 극도의 긴장으로 몰고 가는 호흡조절도 웬만한 기성 영화를 능가했다.

“어른이 돼라. 어른이 돼야지.”

영화 속 마지막 대사는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들은 이미 ‘어른’을 넘어선, 당찬 청년들이었고 이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의지에서 한국영화의 미래가 보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돼 뉴커런츠 부문 특별언급상 등 4개 상을 받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영화제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영화는 유명해졌다. 마침내 ‘초짜’ 감독과 배우의 합작품은 18일 전국 20여 극장에서 세상과 만나는 ‘기적’을 낳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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