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엘리자베스 코스텔로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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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쿠시 씨. 2002년 호주로 이민한 뒤 매년 한 편씩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호주 여성 작가를 등장시킨 장편이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존 쿠시 씨. 2002년 호주로 이민한 뒤 매년 한 편씩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호주 여성 작가를 등장시킨 장편이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존 쿠시 지음·왕은철 옮김/304쪽·1만 원·들녘

존 쿠시 씨는 200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다. 그는 그해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수상식장에서 연설 대신 소설을 낭독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 대니얼 디포와 관련된 소설이었다. 그는 이처럼 연사로 나서서는 가끔 연설 대신 소설을 읽는 때가 있다. 이와는 달리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는 정식 연설을 하러 다니는 소설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 대한 이야기다.

쿠시 씨는 2002년 호주로 이민을 갔다. 코스텔로는 호주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예순여섯 살의 여성 소설가로 나온다. 그녀는 미국 네덜란드 등지에 초청돼 연설을 하는데 인간, 동물, 에로스, 악(惡), 소설, 리얼리즘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룬다. 이 소설은 외국으로 연설하러 가는 그녀의 여정,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벌인 가시 돋친 토론, 그리고 연설 내용을 써놓았다. 전통적인 소설의 거푸집으로는 도저히 찍어낼 수 없는 주제들을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포스트모던한 기법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의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요슈타인 가더 씨가 쓴 철학 입문 소설인 ‘소피의 세계’의 성인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 ‘시인들과 동물들’에서 동물의 정신과, 동물의 정신을 흉내 내는 기계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는 데서 촉발된 토의는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

“카뮈가 어릴 때 할머니가 그에게 뒤뜰의 닭 한 마리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말에 따랐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부엌칼로 닭의 머리를 자르고, 그릇으로 피를 받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닭이 죽어가면서 지르던 소리가 소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958년에 단두대에 반대하는 감동적인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 부분적으로 힘입어서 사형제도가 폐지됐습니다. 그렇다면 닭이 말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코스텔로)

“닭들을 죽이는 도살업자와 사람을 죽이는 사형집행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들은 같은 척도에 속하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죽음 앞에서 상상력의 좌절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소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좌절감, 그걸 정복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좌절감이 없습니다.”(오헌 교수)

제6장 ‘악의 문제’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새총에 맞아 나무에서 굴러 떨어진 한 마리의 참새와 대기에서 사라진 하나의 도시 중 어느 것이 더 심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그것 모두가 악이요, 사악한 신에 의해 만들어진 사악한 우주다.”

쿠시 씨는 “나에게 소설은 사유의 한 형식이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이 소설은 철학 미학 윤리학의 차원에서 오가는 다양한 담론들과 세계를 보는 다원주의를 듬뿍 맛볼 수 있게 하는 뛰어난 관념소설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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