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수신료소송]2000억 포기, 수신료 인상과도 관계있나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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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억원만 돌려달라”KBS가 판결이 확정될 경우 2000여억 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506억 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을 해달라”며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사본.
“506억원만 돌려달라”
KBS가 판결이 확정될 경우 2000여억 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506억 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을 해달라”며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사본.
수신료의 성격을 둘러싼 한국방송공사(KBS)와 국세청(영등포세무서)의 소송 논란이 ‘이상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소송에서 치열하게 다퉈야 할 상대방인 원고(KBS)와 피고(국세청)가 같은 편에 선 듯 비슷한 주장을 펴고, 10년 가까이 KBS 측을 대리해 1심 소송을 이끈 변호사가 이에 맞서고 있다. 또 KBS 내부에서 이 소송을 담당했던 전직 직원도 KBS 측을 반박하고 나섰다. 쟁점별로 정리해 본다.

▽KBS, 1심에서 이겼나 졌나=KBS는 6일 본보 보도에 대해 반박자료를 내면서 “1심에서 이긴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 판결 내용은 이렇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13일 1995∼2000년 영등포세무서가 부과해 KBS가 납부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취소하라’는 것은 돌려주라는 뜻이다. 당초 KBS가 청구한 소송금액은 약 2300억 원. 판결문 주문(主文)을 토대로 계산하면 법원은 이 가운데 약 1990억 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KBS는 “소송금액 중에는 자진 납부한 금액과 강제로 추징당한 금액이 섞여 있는데 확실하게 승소한 금액은 강제 추징당한 506억 원이며, 나머지 소송금액은 우리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항소심 재판을 계속하는 것보다 ‘조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심 소송을 대리한 K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한 금액은 1990억 원으로 이자까지 합치면 2700억∼2800억 원에 이른다”며 “상급심에서 이 판결이 확정되면 모두 찾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KBS는 또 “우리는 1심에서 선고된 16건의 사건 중 9건을 졌다”며 “그 이유는 입증책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 변호사는 “몇 건을 이기고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전체적으로 소송가액 2330억 원 중 1990억 원을 승소했는데 어떻게 졌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산해서 과세?=KBS는 1심 판결 내용에 대해 “2000억 원의 세금이 취소되더라도 다시 계산을 해서 세금을 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세금 액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KBS가 최종적으로 승소하더라도 세금계산을 다시 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K 변호사는 “수신료는 헌법재판소에서 특별부담금이라고 성격을 규정한 만큼 수익금액이 아니므로 원천적으로 세금계산을 다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관한 세금계산 기준도 법에 없기 때문에 승소할 경우 국세청이 다시 계산해 부과하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했다.

세금계산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국세기본법상 세금 부과 제척(除斥)기간은 5년이다. ‘소멸시효’처럼 5년이 지나면 세금부과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KBS가 1심에서 승소해 돌려받게 된 세금은 1995∼2000년에 낸 것으로 대부분 제척기간이 지났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의 경우 제척기간과 관계없이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1년 이내에 당초 과세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새로운 과세결정이나 증액결정은 안 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고 K 변호사는 반박했다.

▽KBS가 조정을 원하는 이유는?=KBS는 확정판결까지 수년간 소송이 진행돼야 하고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더라도 구체적인 세액산출 방법을 놓고 또다시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고민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KBS 전 관계자나 K 변호사 등은 “올해 KBS가 6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경영상 어려움을 일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먼 미래의 2000여억 원보다 가까이 있는 현금 500억 원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방송계 주변에선 수신료 인상 명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소송을 통해 KBS가 최종 승소할 경우 수신료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또다시 시청자들에게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명분이 상당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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