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故정양은 서울대교수 譯書‘심리학의 원리’ 출간

  • 입력 2005년 7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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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세월을 쏟아 부어 심리학의 고전을 선물해 주신 스승의 노고가 결실을 보도록 하는 일이 스승의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2월 심장마비로 타계한 정양은(사진)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제자 10명이 스승의 미완성 번역서 유작(遺作)을 가다듬어 지난주 책으로 펴냈다. 바로 심리학의 최고 고전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전 3권·아카넷).

그 제자들 중 서강대 조긍호(57), 서울대 민경환(56), 가톨릭대 박영석(45) 교수를 8일 민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스승의 업적을 이어받아 완성한 훈훈한 공동작업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1890년 출간된 ‘심리학의 원리’는 방대하고 난해하기로 유명한 책. 제임스는 프래그머티즘 사상가이자 독일의 빌헬름 분트와 함께 심리학을 독자적 학문체계로 정립한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그가 당시 철학과 생리학의 영역에 묶여 있던 의식, 자아, 사고, 감정 등 오늘날 심리학의 주제들을 분류하고 각종 실험과 관찰결과를 12년에 걸쳐 집대성한 책이 바로 ‘심리학의 원리’다.

스승 정양은 서울대 명예교수가 2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심리학의 원리’를 번역 출간한 서울대 민경환, 서강대 조긍호, 가톨릭대 박영석 교수(왼쪽부터). 김미옥 기자

스털링 P 렘프레히트는 ‘서양철학사’에서 ‘심리학의 원리’가 출간된 1890년을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 철학체계를 구축한 분수령이 되는 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방대해 제임스 스스로가 이 책의 ‘축약본’을 따로 출간해야 할 정도였다.

“심리학계에서 그 축약본을 ‘지미’로, 원본을 ‘제임스’로 부르는데 일본에서도 지미는 번역됐지만 제임스는 번역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내용의 방대함도 문제였지만 빅토리아풍의 영어와 라틴어가 뒤섞여 난해하기 때문입니다.”(민 교수)

정 교수는 1984년부터 총 2권 1400쪽 분량인 이 대작의 번역에 착수해 1993년 1권 번역을, 1999년 2권 번역을 마쳤다. 그는 이후 초벌 원고를 퇴고하며 가다듬는 한편 해제를 써 나갔다. 그러나 결국 이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선생님은 1998년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전날까지도 라틴어사전을 들고 계셨습니다.”(민 교수)

“선생님과 저희 제자들은 1981년 전남 해남 두륜산 아래서 두륜회를 조직한 뒤 매년 방학 때마다 2박3일씩 여행을 떠났습니다. 선생님은 워낙 학구적이셨기 때문에 여행지에서도 학술논문을 발표하게 하거나 토론회를 여셨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토론회에 가장 늦게까지 앉아 계셨던 분은 언제나 선생님이셨습니다.”(박 교수)

스승의 각고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봐 온 제자들이기에 스승이 20년 세월을 바친 유고를 출간하는 일은 공동의 과제가 됐다. 10명이 책의 28개 장을 나눠서 1년 동안 어려운 고어투,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등 마무리 작업을 했다.

“선생님은 20년 동안 ‘심리학 원론’ 번역에 매진하심으로써 후학들에게 참으로 커다란 선물을 남겨주셨습니다.”(조 교수)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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