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문화재-미술관 기증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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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서 태어나 고려청자의 매력을 느낀 뒤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50여 년간 모아 온 문화재와 송암미술관을 13일 인천시에 기증하는 이 회장이 9일 송암미술관을 둘러보며 감회에 잠겨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개성에서 태어나 고려청자의 매력을 느낀 뒤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50여 년간 모아 온 문화재와 송암미술관을 13일 인천시에 기증하는 이 회장이 9일 송암미술관을 둘러보며 감회에 잠겨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7억 원이라고요? 누가 샀습니까?”

2001년 4월,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에 문의 전화가 잇달아 걸려 왔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1755년 작)가 7억 원에 팔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구입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7억 원은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最高價)였다.

그러나 확인은 쉽지 않았다. ‘유명한 기업인’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천으로 갔어”, “송암이라는데…”라는 얘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송암은 개성 출신의 이회림(李會林·88)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의 호. 그가 이번에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때 구입했던 ‘노송영지도’를 비롯해 50여 년 동안 수집한 문화재 8400여 점을 인천시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문화재를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인천 남구 학익동의 송암미술관까지 통째로 기증한다.

이 소식을 듣고 9일 송암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을 둘러보던 이 회장은 미수(米壽)의 고령이었지만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아쉽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회에 돌려줘야죠. 인천에서 동양화학 공장을 운영하면서 인천 분들에게 빚진 게 많은데…. 개성상인의 신용의 실천이라고 생각하시죠, 뭐.”

그는 고향 개성 덕분에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만월대, 선죽교…. 고려의 문화유산이 참 많은 곳이죠. 고려청자를 보고 자라며 ‘나도 한번 고려청자를 모아 봐야지’ 이런 생각을 했죠. 그리고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보니 일본인들이 빼가는 우리 문화재가 너무 많았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14세 때 잡화도매상 점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 회장. 그가 처음으로 문화재를 수집한 것은 6·25전쟁 때 서울 동대문시장에서였다.

“전쟁 때라 돈이 궁한 사람들이 종종 문화재를 들고 나오더군요. 평소 가격의 20∼30%만 주어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산 것이 겸재 그림과 도자기였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뜯어보느라 밤을 꼬박 새웠지요.”

1950년대 이후 인천에 동양화학(동양제철화학 전신)을 창업하고 이런저런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이 회장의 사업은 번창했다. 1960년대엔 당대 최고의 문화재 컬렉터였으며 개성 출신으로 동원실업을 운영했던 이홍근(李洪根)의 집을 드나들었다. 1970년대엔 개성 출신인 최순우(崔淳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교유하면서 문화재를 열심히 배우고 또 열심히 구입했다. 소장품이 늘어나자 1989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송암미술관을 세웠고 이후 1992년 인천에 건물을 새로 지어 미술관을 옮겼다.

대부분의 컬렉터가 그렇듯 이 회장 역시 사고 싶은 명품을 구입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아쉬웠다고 한다. 그는 “좋은 건 한번 놓치면 영영 다시 구입할 수 없다”고 말하더니 미술관 2층의 고려 금동대탑 복제품 앞에서 잠시 멈췄다. 금동대탑 진품은 호암미술관 소장품으로 현재 국보 제213호.

“1970년대 말인가, 삼성의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이 금동탑을 수집했다는 걸 알고는 아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계속 눈에 아른거리더라고요. 그래서 10년 전쯤 미술관 직원들에게 복제품을 하나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복제품이라도 보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좋은 작품을 구입하면 상황은 정반대.

“2001년 겸재의 ‘노송영지도’를 구입해 한 달 동안 제 사무실에 보관했는데 문화재를 수집한 50년 중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와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의 작품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고암과 운보의 열렬한 팬이다.

“운보는 천재인데 고암은 더 천재지”라고 중얼거리곤 건물 밖 정원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그때 미술관의 조계연(趙啓淵) 학예실장이 기자에게 속삭였다.

“50년 된 회장님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까? 기증하고 나면 또 문화재 구입하러 다니실 겁니다.”

인천=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이회림 명예회장은▼

△1917년 개성 출생

△1932년 개성 송도보통학교 졸업

△1937년 개성에 포목도매상 설립

△1959년 인천에 동양화학 설립

△1992년 인천에 송암미술관 건립

△현재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송암문화재단·송도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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