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흑산도 하늘 길’…토굴에서 정약전의 갇힌삶 그려

  • 입력 2005년 3월 25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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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흑산도 하늘 길’을 낸 소설가 한승원 씨. 그는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의 한 언덕에 지은 25평짜리 집필실 ‘해산토굴’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승원
최근 ‘흑산도 하늘 길’을 낸 소설가 한승원 씨. 그는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의 한 언덕에 지은 25평짜리 집필실 ‘해산토굴’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승원
◇흑산도 하늘 길/한승원 지음/326쪽·9000원·문이당

9년 전 서울을 훌쩍 떠나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바닷가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해산(海山)토굴’을 짓고 스스로를 가둔 채 집필에만 전념해 온 작가 한승원(66) 씨. 그가 조선 순조 때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 가 생을 마쳤던 실학자 정약전(1758∼1816·다산 정약용의 형)의 유배지 삶을 그린 신작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 길’(문이당)을 냈다.

절해고도에 몸이 갇히고도 진리의 구도자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우리나라 최고의 어류학 서적 ‘현산어보’(玆山魚譜·‘자산어보’로 알려져 왔으나, ‘玆’는 검다는 뜻으로 쓸 때는 ‘현’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 씨는 말한다)를 남긴 정약전의 생애를 자신의 삶에 투영한 작품이다.

해산토굴은 자신의 호에 ‘토굴’이라 이름 붙인 한 씨의 집필실. 토굴이라지만 기와지붕을 얹은 25평짜리 집필실이다. 토굴은 불가에서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을 낮춰 부르는 말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는 “처음 지을 때만 해도 넓게 느꼈는데, 이제 곳곳에 책이 쌓이다 보니 너무 좁아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하루 세 차례 식사 때마다 91세의 노모에게 인사를 드리러 150m 정도 떨어져 있는 살림집에 내려갈 뿐 항상 이 ‘소설 공장’에 갇혀 지낸다. 그가 매년 적어도 소설 한 권씩이라도 꼬박꼬박 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갇혀 지내는 생활 때문이다.

소설은 흑산도로 유배 간 ‘천주학쟁이’ 정약전이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그곳의 자연과 친화하고 ‘무지랭이’ 현지인들과 융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무엇보다 물고기 족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유배지의 갇힌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천재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책 말미에는 작가가 정약전을 만나 묻고 답하는 가상 인터뷰를 실었고, 두 페이지에 걸쳐 참고자료도 넣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거무라는 여인을 첩으로 맞아들여 절대고독에서 벗어나 섬사람들과 섞이고자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감시의 눈초리는 그를 우울증과 무력증에 시달리게 했고, 여기서 벗어나고자 술을 가까이 했다. 그는 결국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귀양살이 16년 만에 유배지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미 15년 전부터 정약전, 약용 형제의 삶에 관심을 갖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한 씨는 “인간의 삶은 바로 ‘가둬 놓기’와 ‘놓여나기’의 길항작용 속에서 이뤄진다”며 “그 사이의 장력이 팽팽해야 긴장감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는 각각 흑산도와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며 저술을 마칠 때마다 오직 한 명의 독자인 동생과 형에게 보내 삶을 제대로 살았는지 증명을 받았다.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형은 대단히 명석한데 다만 부지런하지 못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현산도 동생이 흑산도로 유배 가는 형에게 붙여준 호. 흑산도의 흑(黑)은 흑심 흑막 흑색선전에서와 같이 더러움과 어두움인 반면 현산의 현(玆)은 그윽하고 현묘한 하늘세상이나 밝음의 시공으로 이해된다는 것.

한 씨는 “정약전, 약용 형제는 겉가죽과 속가죽으로 만들어 다른 소리를 내는 장구처럼 같은 시기에 유배생활을 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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