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클로텔, 제퍼슨 대통령의 딸’

  • 입력 2005년 2월 25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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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텔, 제퍼슨 대통령의 딸/윌리엄 웰스 브라운 지음·오준호 옮김/402쪽·1만2000원·황금가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부여했다.”(미국 독립선언서의 일부)

미국의 ‘국부(國父·The Founding Fathers)’ 가운데 한 사람인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이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그는 또 많은 대중연설에서 노예제도의 폐해를 꼬집으며 노예들이 언젠가 혁명으로 자유를 되찾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년 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보도됐듯이, 그에게는 흑인 노예 샐리 해밍스와의 사이에 낳은 혼혈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예였다.

이 책은 탈출한 노예이면서 미국 노예 해방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흑인 작가 윌리엄 웰스 브라운(1814∼1884)이 제퍼슨의 혼혈 자식들을 모티브 삼아 지은 소설이다.

책이 쓰인 1853년에 널리 퍼졌던 제퍼슨에 관한 ‘소문’을 씨줄로 삼고 저자가 노예 해방운동을 펼치면서 직접 보고 들은 다양한 흑인 노예들의 실제 이야기를 날줄로 해 노예제의 참상을 고발했다. 물론 클로텔은 허구의 인물이다.

제퍼슨의 하인이자 정부였던 커러는 제퍼슨과의 사이에서 낳은 클로텔과 알데사라는 두 딸과 함께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경매시장에 나온다. 클로텔은 그를 사랑한 백인 청년에게 팔려 그와 결혼하고, 어머니 커러와 알데사는 감리교 목사 존 펙에게 팔린다.

정치적 야심이 컸던 클로텔의 남편은 지역 유력자의 외동딸과 다시 결혼하고 클로텔과 딸 메리는 버림받는다. 딸과 헤어져 다시 팔린 클로텔은 남자 노예와 탈출해 자유를 얻지만 딸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러나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 포토맥 강의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한다.

작가는 자신의 자식은 노예로 내버려두면서도 연설 등을 통해 노예제도를 비판했던 제퍼슨처럼 이중적인 백인의 위선을 당시 미국의 기독교계에서 발견한다.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장로교 등 개신교단은 모두 60여 만 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성경 말씀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노예를 부리는 목사들은 노예들을 배불리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아전인수식으로 강변한다. 한 전도사는 노예들에게 “너희들은 남이 너희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마태복음 7장 12절)고 설교한다. 주인이 바라는 종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도 충실한 종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경매시장에서 부모와 자식이 강제로 헤어지고, 사냥개에게 뜯기고 채찍질을 당하며, 도박장에서 판돈 대용으로 쓰이는 등 이 책에 나오는 노예들의 고통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나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 같은 책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 작가가 자신의 조상을 회상하며 소설적 각색을 불어넣은 책이 독자의 마음을 그나마 편안하게 한다면, 노예제의 굴레가 아직 벗겨지지 않은 상황에서 거칠고 진한 현장의 냄새를 풍기는 이 책은 읽는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한다. 소설이지만 논픽션의 힘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원제는 ‘Clotel, or The President's Daughter’(2000년).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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