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 최정상 여배우의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고(故) 이은주 씨의 죽음 앞에 영화인들은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가 사랑했던 배우 이은주의 가슴 아픈 비보를 접한 우리는 지금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는 추모사를 바쳤다.
그러나 고인의 명목을 빌면서도 누구하나 선뜻 수긍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뜻밖의 죽음이었기 때문.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은 이 씨가 상당기간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경찰에서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상당히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홍글씨'에서의 과다한 노출이 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인 이 씨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씨의 유서에는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매일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람이었지. 일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야'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주홍글씨'의 제작사는 "캐릭터 설정에 힘들어하긴 했지만 이는 연기자로서 고민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영화와 자살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특히 이 씨가 지난해 1월 출연한 한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불면증을 호소했던 것으로 확인돼 '주홍글씨' 촬영 이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이 씨는 '당신은 요즘 불행하십니까?'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소속사 측은 "연기에 대한 중압감이 다른 배우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이 씨에 대해 3일 우울증 진단을 내린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측은 그러나 구체적 진단결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한편 영화계에선 영화나 연기와 관련 없이 경제적 문제나 가족간 불화 등 개인적 문제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적지 않게 나돌고 있다.
이처럼 이 씨의 자살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그가 유서에서 남긴 '언니'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유서에서 '마지막 통화, 언니 고마웠고 미안했고 힘들었어. 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했던 사람, 고마웠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확정한 만큼 더 이상의 수사는 없다고 못 박았다. 따라서 이 씨의 죽음은 가수 김광석 씨와 홍콩배우 장국영 씨의 자살처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4일 오전 발인을 앞둔 이 씨의 빈소에는 가수 전인권 씨(51)와 바다 씨(25)가 22일에 이어 23일에도 자리를 지키는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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