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83>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16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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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지의 말을 듣자 한왕은 벌써 속이 반나마 풀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이번에는 진평을 불러 꾸짖었다.

“그대는 처음 위나라를 섬기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 초나라로 갔고, 지금은 또 한나라로 와서 과인을 돕고 있다. 원래 신의 있는 선비는 이렇게 여러 가지 마음을 품는 것인가? 또 그대는 장수들의 금은을 받고 그 많고 적음에 따라 대우를 달리 했다는 말을 들었다. 재주 있는 이의 사람 쓰는 법은 원래 그러한가?”

군왕에게서 듣는 꾸짖음으로서는 엄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나, 진평은 태연스럽기가 산악 같았다. 정색을 하고 한왕을 우러르며 말하는데, 빌붙는 구차함이 전혀 없었다.

“신은 일찍이 위왕(魏王)을 섬겼으나 위왕이 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그를 떠나 항왕(項王)에게로 갔습니다. 하지만 항왕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여, 그가 무겁게 쓰고 총애하는 것은 언제나 항씨(項氏)일가가 아니면 가까운 처족(妻族)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뛰어난 책사(策士)가 있어도 제대로 쓰이지 않으니 이에 신은 다시 초나라를 떠나 대왕을 찾아왔습니다. 듣기로 대왕께서는 사람을 잘 가려 쓰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신은 초나라를 떠나 올 때 그곳에서 받은 것은 모두 두고 와서 대왕의 장하(帳下)에 들 때에는 맨몸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장수들이 갈라 보내준 황금을 받지 않고서는 쓸 수 있는 재물이 전혀 없기에 보낸 것을 받아들이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기강을 헤쳐 가며 장수들로부터 황금을 거둔 적은 없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신의 계책 중에 쓸만한 것이 있다 여기시면 받아들여 써 주시고, 쓸만한 계책이 없다면 행실을 따질 것 없이 신을 내쳐주십시오. 신에게는 장수들로부터 받은 황금이 아직 그대로 있사오니, 잘 봉하여 관고(官庫)로 돌려보내고 이 길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진평의 말을 듣자 한왕은 비로소 일의 앞뒤가 보이는 듯했다. 오히려 진평에게 귀 얇은 허물을 빌고 많은 상을 내린 뒤 그대로 호군중위(護軍中尉)에 머물러 다른 장수들을 감독하게 했다. 그러자 진평을 못 마땅히 여기던 장수들도 감히 더는 그를 헐뜯지 못했다.

한나라의 병제(兵制)에 새로운 변화가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세력이 크고 먼저 나라의 기틀을 잡은 초나라는 진작부터 기마대를 따로 두어 싸움을 이끌었다. 그러나 한나라는 왕의 중군을 지키는 위사(衛士)들과 장수들만 말을 탔을 뿐 따로 기마대가 없었다. 그 바람에 자주 적의 기마대에 짓밟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와서 한나라도 기마대를 따로 두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장(騎將)으로는 누구를 세웠으면 좋겠는가?”

몰려오는 초나라 기병을 막기 위해 5000의 기마대를 따로 뽑은 뒤 한왕이 여럿에게 물었다. 장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중천(重天) 사람 이필(李必)과 낙갑(駱甲)이 좋겠습니다. 둘은 모두 옛 진나라 때부터 기사(騎士)로서 말 타고 싸우기를 익혀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교위(校尉)로 있어 기장으로 세워도 모자랄 게 없습니다.”

이에 한왕이 이필과 낙갑을 기장으로 세우려 하자 두 사람이 모두 사양하며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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