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부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딸”

  • 입력 2005년 1월 14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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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심재룡 전 서울대 교수 및 고 서문자 전 대한간호학회장과 종교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은 길희성 전 서강대 교수가 자신의 새 책을 두 친구에게 헌사했다.
고 심재룡 전 서울대 교수 및 고 서문자 전 대한간호학회장과 종교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은 길희성 전 서강대 교수가 자신의 새 책을 두 친구에게 헌사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친구, 부처님의 아들 심재룡과 그리스도의 딸 서문자를 생각하며.’

비교종교학자 길희성 전 서강대 교수(62)가 지난해 말 출간한 책 ‘보살 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의 첫머리에 적은 헌사다. 길 전 교수는 절친한 친구였던 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서문자 전 대한간호학회장을 지난해 10, 11월 잇따라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가능성을 제시한 책이기에 두 친구에게 바쳤습니다.”

길 전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닌, 사랑과 자비의 힘이며 예수와 부처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힘을 매개해 주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 신자이면서 불교를 전공해 두 종교 간 대화를 모색해 온 길 전 교수와 불교신자였던 심 전 교수,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서 전 회장의 종교와 가치관을 뛰어넘는 우정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길 전 교수와 심 전 교수는 서울중·고교와 서울대 철학과 동기동창인 50년 지기였다. 길 전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신학을,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과 불교를 공부했다. 심 전 교수는 미 하와이대에서 비교종교학과 불교철학을 전공했다. 심 전 교수가 1979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길 전 교수도 1982년 같은 과 교수로 갔다가 2년 뒤 다시 서강대 종교학과로 옮겼다.

“심 교수는 불교에 대한 제 관심이 진지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알았고 궁극적으로 두 종교가 하나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길 전 교수는 1984년 ‘지눌의 선(禪)사상’이란 저술로, 심 전 교수는 지난해 ‘지눌 연구: 보조선과 한국불교’라는 연구서로 각각 ‘열암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심 전 교수의 상은 아들이 대신 받아야 했다.

서 전 회장은 길 전 교수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서울 을지로교회에서 청년회를 맡았을 때 처음 만났다. 특히 길 전 교수의 부인과 서 전 회장이 이화여고 동창이어서 두 부부가 서로 가깝게 지냈다.

1987년 길 전 교수가 한완상 당시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목사와 교단이 없는 평신도 중심의 ‘새길교회’를 세우자 서 전 회장 부부도 이 교회로 옮겼다. 이후 서 전 회장 부부는 길 전 교수 주도의 성경연구반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주제로 한 길 전 교수의 신학강좌에도 꼬박꼬박 참여해 우의를 다졌다.

“서 전 회장은 모태신앙이었음에도 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했지요. 타 종교는 물론 인간의 문화와 지성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지닌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길 전 교수는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두 사람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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