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체제이론으로 본 북한의 미래’

  • 입력 2004년 9월 24일 16시 15분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세계로 재편입되기 위해선 미국의 초청장이 필요하지만 미국은 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북-미관계의 딜레마라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세계로 재편입되기 위해선 미국의 초청장이 필요하지만 미국은 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북-미관계의 딜레마라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계체제이론으로 본 북한의 미래/서재진 외 4인 지음/311쪽 1만5000원 황금알

북한은 핵위협을 가하며 세계 최강국 미국과 1 대 1로 맞붙는 강대국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러나 속셈은 미국이 중심으로 있는 자본주의 세계에 끼고 싶은 거다. 그것도 스타일 안 구기면서. 미국은 그런 북한을 끼워 주고 싶은 맘이 조금도 없다. 하는 짓도 맘에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책은 세계체제이론을 북한에 적용해 북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망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주창한 세계체제이론은 세계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이며 중심국-반(半)주변국-주변국으로 구성된 그 체제의 중심국은 미국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동서로 분단된 냉전시대에도 적용됐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독자적 진영을 구성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재생산을 돕는 하위체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세계체제이론에 따르면 북한은 영원한 주변국일 뿐이다. 그나마 과거엔 기껏해야 반주변국밖에 안 되는 소련과 중국의 영향 아래 탄생하고 유지되다가 공산권이 붕괴한 뒤 비로소 미국의 직접적 영향 아래 놓인 주변국이다. 이에 입각해 북한의 역사를 해부해보면 그처럼 북한이 강조하는 주체성이야말로 대외적 의존성을 감추기 위한 서글픈 몸부림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세계체제이론을 북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이론적 수정을 가한다.

첫째, 중심국인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 다르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이탈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선 봉쇄를 통한 고사전략을 펼쳤고,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국가에 대해선 침투를 통한 종속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대응은 이탈-고립-재편입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재편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세계체제의 중심국인 미국의 초청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미국의 필요에 따라 발부된다. 중국의 개방 개혁정책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적극적 구애로 시작됐다. 소련의 자본주의 편입도 과도해진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일본, 독일로부터 중심국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 미국이 끌어당겨 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두 나라의 자본주의 편입은 미국 상품시장의 확대와 직결됐다.

이탈기와 고립기를 거친 북한에는 이제 재편입의 길만이 남았다. 그러나 체제 내부적으로는 개혁 개방의 길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체제 외부적으로는 미국의 초청장이 없다는 2가지 장애에 직면했다. 북한은 핵카드를 들고 나와 초청장을 내달라고 생떼를 쓴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초청장을 발급하고 싶은 유인 요소가 없다. 북한은 시장규모도 작고, 말도 안 듣는다. 다른 주변국들에 이탈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줄 본보기로 남겨둘 필요가 더 크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핵카드를 흔드는 행위는 오히려 미국의 현상유지 정책의 덫에 걸린 꼴이다. 결국 북한은 쉽게 망하지도 않겠지만, 적극적 변신에 나서지 않는 한 ‘그럭저럭 버티기’에만 머물고 말 것이다. 이 책이 내린 결론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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