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산문집 '뼈' 낸 작가 이외수씨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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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에 갖춘 선방인 ‘격외선당’에서 공작 깃털로 만든 2m짜리 붓을 들고 있는 이외수씨. 강원 춘천시 ‘경춘필방’의 박경수씨가 시험 삼아 써보라고 만들어준 붓이다. 이씨는 “20m가 넘는 화폭에 이 붓으로 한 호흡에 큰 획을 그으면 방안에 묵향이 가득해진다”고 즐거워했다.  -춘천=권기태기자
자신의 집에 갖춘 선방인 ‘격외선당’에서 공작 깃털로 만든 2m짜리 붓을 들고 있는 이외수씨. 강원 춘천시 ‘경춘필방’의 박경수씨가 시험 삼아 써보라고 만들어준 붓이다. 이씨는 “20m가 넘는 화폭에 이 붓으로 한 호흡에 큰 획을 그으면 방안에 묵향이 가득해진다”고 즐거워했다. -춘천=권기태기자
‘봉두난발(蓬頭亂髮)의 작가’ 이외수씨(58)가 새 산문집 ‘뼈’(동방미디어)를 펴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란 말처럼 새 책에서 이씨는 쉬운 우화와 단상(斷想)들을 유유자적 풀어놓다가 돌연 번득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을 들이댄다.

산문집은 “고통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로 시작해 “나 하나가 깨달으면 온 천하가 깨닫는다”로 끝난다. 그 사이에는 음악과 선화(仙畵)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 이씨의 근황을 알려주는 수천개의 문장이 놓여 있다. 강원 춘천시 교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 새 책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흰색 목조주택인 그의 집은 애독자들이 선물한 에스키모 개 빅쇼와 잡종견 뭉크 등이 뛰노는 마당, 숭어들이 헤엄치는 작은 연못, 내방객들이 쉬는 찻집과 명상공간인 ‘격외선당(格外仙堂)’, 집필실 등으로 이뤄졌다.

―집이 선방(禪房) 같을 줄 알았는데, 세속적인 느낌이다.

“어떤 독자는 내가 산사(山寺)에서 원고지에 각혈로 피를 적시며 쓰는 줄 알았다고 한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걸 보고는 ‘배신감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명상도 중요하지만 나와 세상의 조화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산문집 ‘뼈’는 사색들을 간결하게 담은 아포리즘들을 모았다.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이 많은데….

“‘들개’ 등 내 초기 소설에는 주인공 젊은이들이 현실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죽음으로 삶을 절단 내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구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풍류도와 마주쳤다. ‘장수하늘소’ ‘칼’ ‘벽오금학도’ ‘괴물’ 같은 소설에는 ‘풍류사상’이 배어 있다. 풍류사상은 나와 만물의 합일을 중시하고, 합일의 길로 ‘사랑’을 제시한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다.”

―‘뼈’에 실린 글들을 보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다가 폭포처럼 내리치는 대목들이 있다. 하지만 논리적 사색보다 우연한 발상들을 옮겨놓은 것 같은데….

“옛날 선사들은 ‘생각이 끊어진 곳에 도(道)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은 ‘대뇌의 생각’이다. 내 경우엔 생각이 끊어질 때 ‘몸’이 번뜩이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성이 진화하면 감성이 되는 것 같다. 뭔가에 골몰하다가 풀려난 순간의 감성으로 ‘뼈’를 쓰려고 했다.”

―‘뼈’에는 ‘무통분만이 불가능한 것이 예술’이라고 쓰여 있다. 어떨 때 예술 하기가 힘드나.

“붓 만드는 친구가 닭털 붓을 내게 주었다. 나도 선화는 새털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닭털 붓은 모필(毛筆)과 달리 사람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화선지에 먹 방울을 안 떨어뜨리고 붓 끝 대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그 사이 이가 네 개나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샜다 (나중에 오디를 먹으니 검어졌다). 나를 버리고 붓이 가자는 대로 가보자, 그러고 나서 그림 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자고 했다. 그러자 그림이 나왔다.”

―작곡도 하는 것으로 아는데….

“2002년 10월에 ‘황신혜밴드’ 리더인 김형태가 작곡 프로그램인 ‘리즌’을 컴퓨터에 깔아줬다. 나는 하모니카 정도 부는 수준인데, 이론은 팽개치고 감(感)으로 지어 보니 100곡 정도 짓게 됐다. 몇 곡을 홈페이지(oisoo.co.kr)에 올렸는데 반응이 괜찮다.”

―너무 관심사가 분방한 게 아닌가.

“푸풋(웃음).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이 다 보인다. 내 몸에는 온갖 ‘뼈’가 다 있다.”

춘천=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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