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지난해 11월 미얀마 양곤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C조 2차전에서 북한 선수(가운데)가 수원FC 위민 선수 두 명의 견제를 뚫고 슛을 하고 있다. 북한 팀이 3대0으로 이겼다. AFC 홈페이지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시합을 위해 17일 한국에 온다. 종목을 막론하고 북한 선수단의 방한은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수원FC 위민과 맞붙는다. 이기면 23일 오후 2시, 호주 멜버른시티FC와 일본 도쿄 베르디 벨라자 전 승자와 같은 경기장에서 맞붙는다.
연령별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가 대거 포진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지난해 11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수원FC 위민과 대결해 3대0 완승을 거둔 바 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결승에 진출해 우승팀과 준우승팀에 각각 내건 상금 100만 달러(14억6860만 원) 또는 50만 달러(7억3430만 원)를 받고 평양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북한 여자축구는 그동안 대한민국과의 대결에서 20전 16승 3무 1패로 절대 우세이다.
북한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 축구만은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듯 예외다. 북한은 AFC 여자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3번이나 한 강팀이다. 올해엔 순위가 11위로 처지긴 했지만 지난해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랭킹 9위에 오른 여자 축구 강국이다. 한국은 19위다.
그렇다면 북한 여자 축구는 왜 강할까. 그렇게 강한데도 월드컵에만 나가면 힘을 쓰지 못한다. 딱 한 번 8강에 진출(2007년)한 것이 전부다. 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7일 한국에 입국할 예정인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 AFC 홈페이지
● 북한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
내고향여자축구단 방한이 확정된 직후인 5일,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세계 패권을 향한 조선 여자축구의 힘, 강팀의 밑천은 정연한 후비(후진) 육성 체계’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르면 북한 여자 축구가 ‘강호’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체계적인 선수 육성 체계에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13년 개교한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북한 선수 육성 시스템의 핵심이다. 북한 각지에 있는 ‘축구학교’ ‘과외체육학교’ 등에서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를 평양국제축구학교로 보내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조선신보는 “전국적 규모의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신보 분석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은 아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은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가 없어서 죽을 쑤는 것인가. 북한의 다른 종목도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로 운영된다.
그럼에도 여자 축구만 선전하는 이유를 알려면 북한 선수 육성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가령 남자 축구는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한 전직 북한 축구 대표팀 감독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선수들 기초 체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스포츠 종목은 키와 몸무게 같은 체격이 중요하다. 북한은 사춘기쯤에 체격과 힘을 주로 보고 후보군을 뽑아 그때부터 육류와 기름 등을 먹이며 훈련시킨다.
하지만 사람의 어린 시절 영양 상태는 매우 중요하고 이후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초등학교) 때엔 우리 아이가 선수로 클 자질이 있는지, 키가 어느 정도 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일반 가정에서 섭취하는 영양 이상을 보장받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하면 옥수수죽만 먹고 큰 아이를 10대 후반부터 잘 먹여 뛰게 해 봤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국민의 전반적인 체격이 국제 수준을 따라가야 그중에서 스포츠 인재가 나올 수 있는데, 북한은 체격이 왜소해 선수 재목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영양이 전부는 아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로는 선진국과 거리가 있는 폐쇄적인 훈련 방법이나 지도자 능력, 운동 환경, 장비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2024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북한은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해 미국, 독일(이상 3회)과 나란히 이 대회 최다 우승국이 됐다. 동아일보 DB
● 북한에서 여자축구만 발전한 이유
여자 축구는 왜 예외일까. 여자 축구 선수 선발 메커니즘이 다른 종목과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부모 중 딸이 태어나면 “축구나 시켜 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축구는 북한이란 환경 속에서 여자가 성공할 수 있는 극소수 가능성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엄청난 포상이 차례진다.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 선수 개인은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 같은 개인적인 영광과 ‘화선 입당’이라는 정치적 영예도 얻을 수 있다. 화선 입당은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을 현장에서 바로 노동당원으로 만드는 ‘특별 입당 과정’을 의미한다. 또 지방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평양 시민으로 바로 도약할 수 있다. 눈에 띄게 맹활약하면 가족까지 평양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평생 가 보기 어려운 외국 구경은 덤이다.
국제 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딸. 이것은 북한 가정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여자아이들은 5세쯤 되면 모두가 운동선수, 더 구체적으로 여자 축구선수 상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딸에게서 운동 재능이 엿보이면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
영양 공급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굳이 국가가 공급하지 않아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각 가정에서 알아서 딸에게 영양 공급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국 여자아이들이 축구에 매달리니 당연히 인재를 선발할 확률이 훨씬 높다. 만약 세계 다른 나라가 이런 환경이라면 그 국가는 여자 축구 최강국이 됐을 것이다. 다만 한국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선진국 여성은 사회에서 성공할 다른 기회가 많기 때문에 굳이 축구에 올인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축구를 하는 여성 인재 풀(pool)이 협소하니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확률도 떨어진다.
2024년 평양 중앙당 본부청사에서 콜롬비아 20세 이하(U-20) 여자 축구 월드컵 우승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김정은이 엄지를 들어올리며 치하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반면 북한은 공부 잘하는 여자가 성공할 확률보다 축구 잘하는 여자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평양이 아닌 지방의 가난한 가정 여자아이는 대학에 갈 확률도 희박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국가가 직업을 정해 주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잡기 어렵다. 한국이라면 의대에 가서 의사를 할 정도의 머리를 가진 여성이라도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나쁘고 가난하다면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농민이나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자 축구는 북한 여성에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렇게 목적의식이 철저한 여자아이들이 혀를 깨물며 훈련하니 여자 축구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2024 콜롬비아 20세 이하(U-20) 여자축구 월드컵 우승 소식을 전한 노동신문 1면. 노동신문 캡처
● 북한 여자 축구가 월드컵에선 죽을 쑤는 이유
북한 남자아이들도 같은 목표를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불행하게도 남자 축구는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 남자아이들에게도 축구는 매력적인 보상과 뚜렷한 동기 부여가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에서는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으니 남자 축구는 기회비용 차원에서 여자 축구에 비해 인생을 다 걸 이유가 떨어진다.
그렇다면 17세 이하(U-17)나 U-20은 세계 최강국 반열에 드는 북한 여자 축구는 왜 성인 무대인 월드컵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까. 월드컵에 4번 나가 8강에 한 번 든 것이 최고 성적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다. 17세나 20세 때 만나는 상대와 월드컵에서 만나는 상대는 전혀 다르다. 10대 중반에 축구에 인생을 걸겠다고 마음먹는 축구 강국(대부분 선진국이다) 여성은 많지 않다. 축구를 몇 년 해 보다가 적성에 맞고 역량이 되니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다.
20세 이하 북한 여자 축구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만나는 상대는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훈련이 많이 필요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5~6세부터 전문적으로 육성된 데다 오랫동안 다져진 조직력까지 더해진 북한 선수들이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반면 선진국 월드컵 국가대표 여성은 축구에 인생을 건 선수다. 동시에 축구 경력도 꽤 많다. 체격과 힘이 좋은 선진국 여성이 축구에 올인해 6~7년 정도만 훈련하면 북한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선진국 여자 프로축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훈련 환경에서 선진적인 기술과 전술을 연마한다. 성적이 좋으면 보상도 따른다. 똑같이 ‘밥줄’이 걸린 조건이라면 북한 선수의 힘과 체력, 정신력은 한계가 분명해진다. 현저한 신체 조건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듯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 장벽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북한 육상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정성옥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여자 선수 최고의 성공 신화
수원FC 위민과 맞붙을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은 그 어느 경기보다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우승 상금 100만 달러도 큰돈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한국과의 경기에서 넣는 골은 ‘값’이 달라진다. 가령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첫 남북 대결에서 첫 골을 넣은 이홍실 선수는 곧바로 화선 입당했고 이후 국제 심판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함경북도 농촌에서 올라와 평양의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이런 표창은 없다. 한국 팀과의 경기는 김정은이 지켜볼 가능성도 높아 그가 기분이 좋아지면 어떤 상을 하사할지 모른다. 반면 이길 것이라 믿었는데 지면, 선수들은 평양에 돌아가 강제노동을 비롯한 엄청난 고초를 당하게 된다. 처벌 강도도 다른 것이다.
북한 체육 선수들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어떤 상을 하사하는가이다. 대회 우승 상금을 얼마 받든 선수들 것이 아니기에 상관없다. 김정은 기분에 따라 하사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진짜 선수 몫이다.
지도자 기분을 만족시켜 최고의 상을 하사받은 선수는 단연 1999년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이다. 그는 우승 소감을 묻자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 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 감동한 김정일은 정성옥에게 공화국영웅 칭호와 고급 승용차 벤츠 500, 평양 고급 주택을 하사했고 우승 상금 6만 달러도 모두 갖게 했다고 한다. 북한에선 국제 대회 우승 선수에겐 공화국영웅보다 한 등급 낮은 노력영웅 칭호와 우승 상금 일부만 준다. 올림픽을 비롯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5개나 딴 유도 스타 계순희도 노력영웅에 불과하다.
단연 선군 시대 영웅이자 정신적 풍모의 귀감으로 떠오른 정성옥이었지만, 몇 년 뒤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는 ‘말실수’를 했다. 이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체력 소모가 심한 마라톤 선수들도 ‘국수죽’을 먹으며 훈련했다. 옥수수 국수를 물에 몇 시간 담그면 면발이 퉁퉁 불어나고 뚝뚝 끊어지는데, 여기에 배추 시래기를 넣고 휘휘 저으면 국수죽이 된다.
정성옥은 1996년에 국가대표팀에서 만난 남자 마라톤 간판 김중원과 연애 중이었다. 김중원은 중국의 성(省)급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8000달러를 받았는데, 자기 몫으로 주어진 상금 중 300달러를 떼서 애인에게 개엿(푹 고아 뼈를 제거한 개고기에 옥수수엿을 넣고 졸인 것)과 개소주를 만들어 먹였다. 그렇다고 체력이 하루아침에 생겼을 리 만무한 일이다.
정성옥이 우승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아버지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황해도 해주 지방공장에서 18년간 화물차 운전사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대회 직전 차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해 재판을 받게 됐다. 감옥에 가게 된 아버지를 살리려면 대회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성옥은 임신중절수술까지 받고 대회에 나섰다.
딸이 우승과 함께 아부성 발언으로 공화국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게 되자 정성옥의 부친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웅의 아버지가 돼 각종 매체에 출연했다.
“(정성옥이) 유명해졌으니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던 김중원도 버리지 않고 1년 반 뒤 결혼했다. 이런 정성옥의 성공 스토리는 북한 스포츠의 신화가 됐다.
수원FC 위민이 만나게 될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은 제2의 정성옥을 꿈꾸며 이를 악문 북한 여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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