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절망의 화가…1863년 에드바르 뭉크 출생

입력 2003-12-11 18:51수정 2009-10-1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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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와 ‘절망의 화가’ 뭉크.

1935년 괴벨스는 뭉크에게 손을 뻗쳤다.

괴벨스는 독일인들의 인종적 편견을 부추기고자 했다. 그는 게르만족의 원형이 잘 보존된 스칸디나비아반도 태생의 뭉크에게서 프랑스 인상주의에 맞설 수 있는 ‘시대정신’을 기대했다.

괴벨스는 뭉크에게 괴테 메달을 수여하고 그의 작품에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뭉크는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나치는 뭉크의 작품이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1937년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된다. 뭉크의 그림은 나치가 기획한 ‘퇴폐미술전’에 전시되어야 했고 여기에 내걸린 그림은 헐값에 경매됐다.

뭉크의 그림은 정치와 무관했으나 시대의 광기는 그의 예술을 모욕했다.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화가’ 뭉크.

어머니는 다섯 살 때 폐결핵으로 죽었고 누나는 그가 열다섯 살 때 역시 폐결핵으로 숨졌다. 누이는 정신병에 시달렸다. 뭉크도 열세 살이 되던 크리스마스 밤 피를 토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우리 가계는 그 뿌리까지 어지럼증(정신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었다. 죽음과 병은 검은 천사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삶과 죽음의 응시(凝視). 이것이 뭉크 예술의 원천이다.

그의 그림은 지옥의 유황불에서 막 건져 올린 듯 흐물흐물하다. 누군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캔버스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음산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병(病)이요, 도취이다.”

사랑의 모티브조차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대표작 ‘마돈나’. 성적 엑스터시에 빠진 듯한 나신(裸身)의 성모. 황홀경에 몸을 던진 채 자신을 포기하고 있는 마리아. 그것은 생명의 환희, 수태(受胎)의 전조이면서 동시에 불길한 ‘시체의 미소’다.

뭉크에게 여자는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었다.

1900년 그는 자살을 기도하며 집요하게 결혼을 강요하는 한 여성 때문에 극도의 신경쇠약을 겪어야 했다. 뭉크는 숨질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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