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상에서…' 한칸의 집만으로도 행복했는데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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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서윤영 지음/289쪽 1만2000원 궁리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어/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금도끼를 썼다 한들 선조들의 마음에 깃든 집은 고작 초가삼간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집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가. 그것은 개인들의 욕망을, 자본의 욕망을, 우리의 가족질서를, 오늘날의 지배담론을 닮았을 것이다.

이 책은 ‘집’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문화를 읽어내는 주거문화 이론서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현재 건축설계업에 종사하고 있다.

○ 타워팰리스도 30년 뒤에는 보통 아파트

타워팰리스(탑처럼 높이 솟은 궁전), 하이페리온(높은 곳을 달리는 자), 아크로빌(높은 마을)….

오늘날 ‘높은’ ‘지배층’ 의식을 강조하는 초고층 아파트들의 인기가 이름처럼 ‘절정’을 누리고 있다.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져 건물 밖으로 나올 일도 없다. 이 사회의 상류층은 보호벽 속에 갇혀 고립되어 갈 것인가.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상류층을 위한 고급주택을 공급하다 보면 그 아래 중산층이 과거 상류층의 주택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 아래 계층은 중산층이 사용하던 주택으로 옮겨 전반적으로 주택의 질은 높아진다는 것. 그는 30년 전만 해도 계층 위화감의 주범으로 인식됐던 여의도 등지의 아파트가 오늘날 중산층의 주거지로 사용되는 현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 아파트가 성공한 유일한 나라

아파트는 본디 노동자들에게 싼 값의 주택을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고급형 주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두 가지 점을 들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처음부터 상류층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공급됐다는 것. 또 하나는 끊임없는 토착화의 시도를 통해 소비자와 대화해왔다는 것. 실제로 우리나라 아파트의 내부는 1930년대 한옥, 이른바 ‘ㅁ자 집’의 구조와 비슷하다.

저자는 아파트의 성공 이면에 숨은 한국사회의 피폐성도 간과하지 않는다. 재산증식과 지위 과시의 도구로 기능하는 아파트는 ‘집’으로서 가져야 할 문화를 상당부분 박탈당했다는 지적이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빨래터의 배타성’만은 아파트부녀회의 집값 담합이나 집단이기주의적 결의 형태로 남았다는 것이다.

○ 여자의 공간, 남자의 공간

냉장고와 세탁기의 광고들. 백색의 새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여성은 한가롭게 차를 마신다. ‘시간을 벌어주는’ 첨단기기에 대한 예찬이지만, 뒤집어 보면 결국 ‘여성은 하녀’라는, 가사에 예속되는 존재라는 이미지의 강조에 불과하다. 저자는 “드레스룸을 없애고 아내의 서재를 꾸미자”고 제안한다.

여성만이 왜곡된 주거문화의 희생양은 아니다. 최근 지은 아파트일수록 주부 전용 공간과 함께, 아이들 공간이 커져간다. “조용히, 애들 공부하잖아요.” 예전에는 집 전체를 자신의 공간으로 여겼던 남성들에겐 역설적으로 자기 공간이 하나도 없어졌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남성의 방’ 바람이 곧 한국에도 불어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이 시대의 기념비는 무엇인가

건축사학자들은 세계 4대 문명 중 대규모 서민 주거지가 발견되는 인더스문명이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추정한다. 로마문명의 상징은 대규모 오락장, 중세의 상징은 성당, 근세는 궁전이었다. 훗날 21세기 초 한국사회는 어떤 건축물군(群)으로 기억에 남을 것인가.

“테헤란로의 지가(地價)는 지하철 역사 부근이 비싸다. 건물의 높이도 지하철역 부근에서 높아진다. 높은 건물일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고급 재료에 정교한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건물들은 적어도 몇 백년은 거뜬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사회의 본색이다.”

연인과 함께 냉동인간이 됐다가 300년 뒤 깨어나 만날 약속을 한다면 만남의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저자는 테헤란로의 높은 건물이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300년 뒤에 그 곳에 들어가자면 먼저 입장료를 지불해야겠지만, 어쨌든 건물은 남아있을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북향은 전망이 아름답고 동향집 수험생들에 좋아▼

집은 마땅히 남향이어야 한다고 믿는 우리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도 서민의 집은 북향이 일반적이었다. 저자는 남향 선호에 가려진 서향이나 동향, 북향 집의 장점도 많다고 설명한다.

▽동향=맞벌이 부부나 중고교생 자녀를 둔 경우에 좋다.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아침이므로 햇살을 가득히 받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서향=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있는 가정에 적합하다. 블라인드가 보급돼 여름 오후 햇살도 견딜 만하다. 따스한 햇살이 유년의 오후를 편안하게 해 준다.

▽남향=노인과 유아 등 온종일 집에 머무르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그러나 낮 시간 집에 사람이 없다면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

▽북향=전망이 아름답다. 태양의 고도에 따른 일조량의 변화가 적기 때문에 재택근무나 연구 활동, 취미 활동 등 집에서의 두뇌 활동이 많은 사람에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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