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촌지봉투? 그래! 제목은 봉두"

  • 입력 2003년 10월 8일 16시 43분


코멘트
서울에서 지방 분교로 간 ‘촌지 교사’와 시골 아이들의 만남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영화 ‘선생 김봉두’. 동아일보 자료사진

서울에서 지방 분교로 간 ‘촌지 교사’와 시골 아이들의 만남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영화 ‘선생 김봉두’. 동아일보 자료사진

《돈봉투 챙기다가 시골 아이들의 순수함에 ‘전염’된 ‘선생 김봉두’. 그는 분교가 폐교된 뒤 서울로 돌아갔을까.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대로 다시 ‘돈봉두’가 됐을지 아니면 그 순수함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을지.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영화배우 차승원, 감독 장규성, 제작사인 ‘좋은 영화’의 김미희 대표를 만났다. 3월 28일 개봉된 이 작품은 전국 기준으로 265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차승원=선생 김봉두! 보름 전쯤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영화가 그 곳에서 개봉했거든요. 인터뷰 기사가 한 신문 1면에 나왔더군요. 이미 ‘엽기적인 그녀’가 좋은 반응을 얻어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영화가 좋다고 하더군요. 감독 있고 주연 배우 있는데 다른 말 하겠습니까(웃음).

▽장규성=싱가포르 사회가 청렴한 편이라 ‘봉투’를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워낙 교육열이 높은 곳이라 영화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라니까 관심이 높았습니다.

▽김미희=개인적인 사정으로 싱가포르에는 동행을 못했습니다. 나이든 할아버지 학생 역을 맡은 변희봉씨의 대사 중 ‘육시럴의 육인가’가 영어 자막으로 ‘섹스(sex)의 six인가’로 번역됐는데 한국 관객과 마찬가지로 많이 웃더랍니다.

영화는 시골 학교의 풍경과 그곳 아이들의 동심을 빛바랜 사진첩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담았다. 촬영은 강원 정선군의 폐교된 분교에서 이뤄졌다.

▽차=영화 개봉 뒤 촬영 장소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거의 6개월 가깝게 머물렀던 곳이라 가끔 생각이 나더군요.

▽장=행정구역은 정선이지만 영월 쪽에 더 가까워요. 영월에서 1시간이 좀 넘게 걸립니다.

▽차=(차를 따라주며) 중국에선 이런 게 예의입니다(차승원은 최근 중국에서 CF를 찍었다). CF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제가 왜 CF 모델상을 받는지 얘기해 줄까요. 97년부터 2000년까지 CF 21개를 찍었어요. 그땐 CF가 많으니까 그냥 찍었죠. 그런데 영화하니까 CF가 안 들어와요.

▽김=영화 하면 CF가 적어져요. TV에 비해 노출 빈도가 떨어지니까.

▽차=본격적으로 영화한 뒤 찍은 CF가 딱 4개죠. 그때부터 정말 ‘몸 바쳐’ 찍었습니다. 한편의 영화 찍듯이 CF를 찍었다니까요. 그랬더니 그 회사 사장님이 추천해서 ‘광고주들이 뽑은 올해의 모델상’을 준답니다.

▽김=지금에야 말이지만 승원씨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개봉 때 배우들이 지칠 정도로 홍보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광고 할 수 있는 탐나는 자리가 있는데 돈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그런데 조건이 주연배우가 한번 방문해주면 광고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편지를 썼어요. 그날 밤 승원씨가 전화로 ‘할게요’라고 하더군요. 정말 고마웠어요.

▽차=편지만 있었어요. 촌지는 없고(웃음)…. 착해진 김봉두죠. 촌지가 있었으면 거절했겠죠.

▽김=처음 만났을 때 촌지, 선생님, 학교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2001년 10월쯤 장 감독이 데뷔작인 ‘재밌는 영화’를 찍다 선생님 얘기가 하나 있다고 했죠.

▽장=승원씨가 작년 여름쯤 ‘광복절 특사’를 찍고 있을 때 ‘선생 김봉두’ 얘기를 했습니다. 승원씨는 조감독 시절부터 아는 사이라 친구처럼 지내죠. 그런데 패러디 영화인 ‘재밌는 영화’를 3류 영화라고 놀려대더니 ‘선생 김봉두’에는 관심을 보였어요. 차승원이란 배우가 ‘좋게 말하면’ 영악한 거죠.

▽차=좋게 말하면 머리가 좋은 거지. 나쁘게 말해야 영악한 거고(웃음).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었죠. ‘선생 김봉두’란 타이틀의 뉘앙스가 너무 좋았습니다. 전 영화가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것 모두 싫거든요. 원래 다른 걸로 하기로 했다가 작품이 마음에 들어 김봉두가 돼 버렸죠.

▽김=‘재밌는 영화’도 괜찮은 영화예요(역시 김 대표가 제작을 맡았다). 장 감독의 개성에 어울릴 것 같아 연출을 맡긴 건데…. ‘선생 김봉두’의 흥행은 좀 아쉬웠어요. 350만명에서 400만명 사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해피’해요. 관객이 많이 드는 것보다 영화를 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흥행. 전 거꾸로예요. 스태프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200만 명이 넘으면 내 돈으로 해외여행 보내준다고. 그런데 넘어버렸어요. 100만명, 200만명도 쉽지 않거든요. 사실 영화는 작은 이야기인데 의외로 많은 분이 재미있게 본 거죠.

▽차=전 무조건 잘 된다고 했습니다. 300만명은 넘을 줄 알았어요. 중간에 자주 ‘떨고’ 있는 감독님에게 무조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내가 연기는 못해도 흥행에 대한 감각은 족집게거든요.

▽장=처음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폐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생이 세 명, 다섯 명이라도 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왜 없애냐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촌지를 많이 받은 교사가 들통 나 쫓겨났다는 기사가 났어요. 어, 이런 사람이 있네. 이런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학교에 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봉두’가 ‘봉투’ 아닙니까.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코믹한 요소를 넣었죠.

▽차=학교 얘기가 남 얘기 아닙니다. 큰 아이가 중 2인데 서울 강남에서 살다보니 상황이 심각해요. 1년 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8평에 사는 아이가 불우이웃으로 뽑혔어요. 교육환경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봉두 찍고 나서는 학교에서 전화가 안 와요(웃음).

이 작품에는 아이들이 여러 명 등장하는 탓에 아역배우에 얽힌 사연도 많았다.

▽장=극중 소석이는 내가 어릴 때 본 친구가 모델이 됐습니다. 이름도 같고. 그 친구도 아버지가 안 계셨고 도시락도 못 싸왔죠. 이 인물이 흥행을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나와 괴로웠습니다.

▽김=승원씨가 아역배우들의 보호자 역할을 많이 했어요. 햄버거도 사주고 달래기도 하고. 감독은 아무래도 일 때문에 혼도 내고 승원씨는 감싸주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었죠.

▽장=아역배우들은 지난해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예 전학을 시켰습니다. 그곳 아이들과 사귀고 학교도 다니고 운동회도 같이 하면서 분위기에 적응하라는 의미였죠. 또 부모님들에게 촬영장에 오지 말라는 약속까지 받았습니다. 지난겨울 부모님들이 촬영장에 왔는데 왜 애들을 ‘학대’하느냐고 항의하던 생각이 납니다.

▽김=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었으니까. 너무 추웠는데 스태프는 파카랑 겨울옷 입고 아이들은 반팔 옷 입고 있으니 데려가겠다는 얘기가 나왔죠.

▽장=소석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는 봉두가 때리는 장면에서 회초리로 엄청 맞았어요. 나중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아파서 서러워 울었어요. 스태프가 영화 안 찍겠다는 애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죠. NG가 나 11번 정도 찍었는데 평생 그 기억을 못 잊을 겁니다.

▽김=‘선생 김봉두Ⅱ’는 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했으면 몰라도 그냥 그 얘기로 남기고 싶어요. 영화가 잘 됐다고 속편을 만들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장 감독 다음 작품이 ‘여선생 vs 여제자’예요. 완전히 학교 선생님 전문 감독이 됐어요(웃음).

▽장=우연찮게 그렇게 됐습니다.

▽차=내가 출연했지만 쉽게 잊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빨리 잊겠죠. ‘선생 김봉두’는 문득 문득 생각나는 영화예요. 이런 영화를 다시 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