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아카시아'로 처음 만난 심혜진(주연) 박기형(감독)

  • 입력 2003년 10월 8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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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밤 ‘영화의 바다’에는 짙은 아카시아향이 가득 퍼질 것이다. 2일 개막된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피날레는 폐막작으로 선정된 한국 영화 ‘아카시아’의 몫이다.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후 이 작품으로 5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영화배우 심혜진(37)과 같은 해 ‘여고괴담’으로 국내 영화계에서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연 박기형 감독(36)이 만났다.

“폐막작 선정이 부담은 돼요. 부산에서 틀었는데 이거 왜 뽑았어 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혈압이 올랐죠. 결혼은 하고 쓰러져야 하는데….”(박 감독)

“폐막작이 돼 안심했어요. 흥행을 떠나 5년 만에 영화 찍는데 왜 찍었냐는 소리는 안 듣게 해 달라고 감독에게 요청했죠. 아카시아 파이팅!”(심혜진)

‘아카시아’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이지만 이제는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둘의 대화는 심혜진이 4, 5년 전 진행을 맡았던 KBS 2TV 토크쇼‘심혜진의 파워인터뷰’를 연상시켰다. 》

▽박기형이 본 심혜진

그는 배우 심혜진에게서 아카시아 향기를 느꼈을까.

박 감독은 “처음 이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주인공은 심혜진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과 프로듀서 사이의 약속이었지만 대안은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박 감독의 ‘심혜진론’은 구체적이다.

“제가 이름을 얻기 전 20대 시절 ‘심스타’는 말 그대로 스타였죠. 그 때의 매력은 상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세월이 지나 30대가 되자 이전의 상큼함이 다른 ‘맛’으로 바뀌는데 그게 영화적입니다. 상큼함에 나이와 생활의 연륜이 덧칠되면서 편안함과 세련미, 때로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의 이미지로 바뀌더군요. 그래서 여주인공 미숙이는 심혜진이라는 자기최면이 점점 강해졌어요. ‘아카시아’란 영화가 독하게 아카시아 향기를 풍기려면 심혜진이 필요했습니다.”

심혜진이 그 말을 받아쳤다. “얘기 가만 들어보니까 그게 사이코 같다는 얘기죠?”

‘자연인’ 심혜진은 어떨까.

박 감독의 대답은 한 마디로 ‘센 여자’. 이에 심혜진은 “그게 칭찬이야 뭐야”라며 불쑥 끼어들었다.

“저는 센 여자를 좋아해요. 세다는 것은 성격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고 일종의 카리스마지요. 자연인 심혜진에게는 미안하지만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요. 40대의 심혜진, 50대의 심혜진은 더욱 멋있을 것 같아요. 감독이기에 앞서 팬으로서의 욕심이죠.”(박 감독)

이에 심혜진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한마디.

“여자 친구 있는 거 다 아는데 박 감독도 결혼하지 마세요. 나 홀로 외롭게 두고 혼자 가겠다는 것은 아니겠죠….”

‘여고괴담’ 이후 공포영화 전문 감독의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박 감독. 앞으로 그의 계획은 리처드 기어와 다이안 레인 주연의 ‘언페이스풀’ 같은 섬세하면서도 아찔한 멜로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다.

“혜진씨, 40대에 꼭 ‘언페이스풀’ 같은 영화 한번 찍읍시다.”

▽심혜진이 본 박기형

심혜진이 보는 박 감독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고무나무랑 비슷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 있죠.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혼자서도 잘 자란다는 의미예요.”

배우로서 느낀 박 감독의 매력은?

심혜진은 “박 감독은 하여간 매력이 있어요. 꼬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죠”라고 말했다. 이에 박 감독은 “구체적 표현이 어려운 것은 매력이 없다는 것 아니냐. 한마디로 한 번 겪어봐라 이건데요”라며 웃었다.

“박 감독을 만나기 전 그가 만든 ‘여고괴담’과 ‘비밀’을 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됐어요. 박 감독은 무엇보다 자기 생각이 정확한 사람입니다. 배우 입장에서도 감독은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를 넘어섰어요. 연기가 맘에 안 들면 말이 없어요. 그냥 버티고. 될 때까지 작업하는 식이에요.”(심혜진)

박 감독이 농담처럼 언급한 한국판 ‘언페이스풀’에 대해 심혜진도 싫진 않은 표정이다.

“‘언페이스풀’을 찍는다면 상대역으로 안성기 선배랑은 싫어요.(웃음) 이왕 찍으려면 젊은 고수랑…. 아, 드라마 ‘다모’에 나왔던 김민준도 좋아요. 분명 안 선배도 젊은 여배우랑 찍고 싶을 거예요.”

역시 심혜진이다. 정말 시원스럽게 웃고 ‘예’ ‘아니오’가 분명한 딱 부러지는 배우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아카시아

‘아카시아’는 피가 튀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가정을 배경으로 한 심리공포극이다.

영화의 무대는 크고 오래된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전원주택. 미숙(심혜진)은 자신의 꿈이었던 직물 공예를 하며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도일(김진근)과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들 부부의 유일한 고민은 결혼 생활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 도일은 미숙에게 입양을 제안하고 부부는 보육원에서 미술에 재능이 뛰어난 아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단절한 채 나무그림만 그리고 그림에 죽은 벌레를 붙여놓는 등 엉뚱한 행동을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실종되고 평온했던 가정에는 하나 둘씩 불길한 사건이 일어난다. 순수제작비 18억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17일부터 일반 극장에서 개봉된다. 15세 이상 관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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