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31>아름다운 싸움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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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일주문을 나서 전나무 숲길을 지나 화장터가 있는 곳까지 걷는다. 수령을 알 수 없는 전나무들이 하늘을 받치고 서서 시간을 넘어서 있는 생명을 말하고 있다.

하늘은 너무 가벼워 보인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조각나 내 시선에 포착되는 하늘은 가을하늘이라는 말에 걸맞게 푸르게 다가온다.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 오는 공기의 청량함은 살아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말하고 있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하나로도 행복해지는 길 위에 서서 이 길을 상여로 떠나야 했던 스님들의 주검에는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살아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이 수행자의 삶일진대 죽어 아쉬움을 남기는 수행자의 삶이란 어쩌면 나만의 감상적 시선인지도 모른다.

북한산에 회룡사라는 절이 있다. 그 절에는 비구니들이 산다. 지난 2년여 동안 스님들은 북한산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굴착기 앞에서도, 동원된 깡패들의 폭력 앞에서도 스님들은 몸이 부서질지언정 북한산을 지키겠다는 뜻을 꺾은 적은 없었다. 모진 시련 속에서도 스님들은 대통령후보의 ‘북한산 관통도로 백지화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것은 스님들이 지닌 희망의 전부였다. 북한산과 함께 산화하겠다는 죽음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제는 대통령이 된 그의 공약 이행에 희망의 전부를 걸고 있다.

숲길이 다한 자리에는 맑은 계곡이 흐른다. 그 계곡을 건너면 바로 화장터다. 이승의 번뇌를 다 씻어주겠다는 듯 계곡은 맑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닦으며 회룡사 스님들의 비원을 생각한다.

북한산을 지켜 생명의 세상을 열겠다는 그들의 결의에 눈물이 돈다. 그들의 비원은 개발과 파괴의 우리들 세상에 새벽을 알리는 범종처럼 다가온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들의 결의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성전스님 월간 ‘해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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