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93>約 定 俗 成(약정속성)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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約 定 俗 成(약정속성)

約-맺을 약 諧-화할 해 矢-화살 시

鼻-코 비 師-군사 사 鴻-기러기 홍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남과 和諧(화해)하는 것도 중요한 德目(덕목)이요 處世術(처세술)이 된다. 그래서 모나고 까다로운 것보다는 두루 뭉실 사는 것이 더 중시된다. 물론 중국에서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인격을 더 높이 평가했다. 괜히 따지고 잘난 체 했다가는 衆矢之的(중시지적·뭇 화살의 과녁이 됨)이 될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던가. 중국 속담에도 ‘내민 새가 살(矢) 맞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耳目口鼻(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이상, 때로 五感(오감)에 거슬리는 경우를 당하면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바른 소리 한 마디쯤은 하고 넘어가야 속이 후련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따분한 장마철인데…. 그러나 쉽지 않다. 도도히 흐르는 黃河(황하)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말뚝을 생각해 보았는가? ‘No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勇氣(용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漢字를 사용하는 데 있어 때로 五感(오감)에 거슬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분명히 틀렸는데도 불구하고 너 나 없이 다들 그렇게 사용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굳어진 결과다. 이것을 約定俗成(약정속성) 현상이라고 한다. 선거철만 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에 ‘出師表’(출사표)가 있다. 이 나라의 기자 양반들, 한결같이 ‘出師表를 던졌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과연 出師表가 ‘던질 수 있는’ 물건인가. 表는 본디 신하가 천자에게 무릎을 꿇고 올렸던 글이다.

또 자주 운위되는 孫子(손자)의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百勝(백전백승)’도 전형적인 約定俗成의 예다. 孫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을 뿐더러 그가 꼽은 최고의 名將(명장)은 百戰百勝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不戰勝(부전승)의 장수다. 그래서 그는 단지 ‘知彼知己면 百戰不殆(백전불태·어떤 형태의 전쟁에 임해도 위태롭지 않음)’라고 했을 뿐이다. 孫子에게 百戰百勝의 장군은 ‘下之下將’(하지하장)에 불과하다.

발음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說明(설명)과 遊說(유세)를 구별한다면 ‘說得’도 당연히 ‘세득’으로 읽어야 옳다. ‘원대한 포부’를 뜻하는 ‘鴻鵠之志’는 ‘홍혹지지’임에도 다들 ‘홍곡지지’라고 버젓이 읽고 있다. 여기서 ‘鵠’은 하늘 높이 나르는 ‘고니’를 뜻하며 단지 ‘과녁’을 뜻할 때만 ‘곡’으로 발음한다. 일전 설명했던 ‘覆蓋’도 ‘복개’가 아닌 ‘부개’가 맞지 않은가.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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