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디 블루스…‘몸의 우울증’ 빛쐬며 걸어라

  • 입력 2002년 11월 24일 17시 37분


“전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하고 나른해요. 밤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 꾸벅꾸벅 졸곤 하죠. 섹스를 한지는 몇 달이 지났어요. 통 흥미가 없거든요. 얼마 전엔 잘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창피해서 혼났어요. 혹시 ‘치매의 초기증상이 아닐까’ 생각했죠. 한 마디로 전 너무 우울해요.”

미국 워싱턴대 간호대의 마리 아넷 브라운 교수는 정신과 전문 간호사로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여성들을 숱하게 만나왔다. 정신과에 갈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중년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이 처럼 딱히 병명도 없는 ‘몸의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

브라운 교수는 이 증상에 ‘보디 블루스(body blues)’라는 이름을 붙였다.

▽레비티(LEVITY) 프로그램〓브라운 교수는 그의 책 ‘보디 블루스’(도서출판 소소)에서 월경전 증후군과 산후 우울증, 계절성 우울증, 폐경기 전후 장애 등 다양한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피로와 불면, 무기력증이 모두 보디 블루스라고 주장했다.

보디 블루스의 원인은 세로토닌의 감소 때문.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은 뇌에서 분비된다. 그런데 생리 전이나 출산 뒤, 수유기간, 폐경기 전후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지며 이 때 세로토닌의 분비 역시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때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브라운 교수는 보디 블루스의 해결책으로 빛(Light), 운동(Exercise), 비타민 섭취 요법(Vitamin Intervention Therapy)의 머릿글자를 딴 ‘레비티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밝은 빛을 쐬면서 하루에 20분 이상 걷고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방법이다.

브라운 교수팀은 가벼운 우울증을 겪는 19∼78세의 여성 112명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눈 뒤 8주간 A그룹에게는 가짜 비타민을 주고 다른 처치는 하지 않았다. B그룹에는 레비티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했다. 그 결과 B그룹 여성들의 우울증 수치가 절반으로 줄었다.

▽빛(Light)〓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생체주기연구소 대니얼 크립케 소장은 성인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불안과 우울증세가 심하다고 밝혔다. 반면 하루에 30분 이상을 야외에서 보내는 사람은 우울증이 거의 없었다. 영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조량이 많은 날일수록 사람의 기분이 좋아진다.

가을이나 겨울에 많이 나타나는 계절 우울증의 경우 빛의 효과는 확실하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계절 우울증 환자에게 매일 강한 빛의 인공조명을 쐬게 하는 ‘광(光)치료’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낮에는 밝게, 밤에는 어둡게 지내는 게 자연의 이치다. 밤에 너무 밝게 지내면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숙면을 취하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는다.

▽운동(Exercise)〓일단 문 밖을 나서서 걸어보자.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등 천연 항우울물질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진다. 운동이 스트레스를 없애고 우울증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하루에 20분씩 분당 최대 심장박동수의 60%가 나오도록 걷는다.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다음 0.6을 곱하면 최대 심장박동수의 60%가 나온다. 나이가 50세면 (220-50)×0.6〓102다. 심박수가 102에서 ±5가 되도록 유지하면서 운동하면 된다. 자신의 분당 심장박동수를 재려면 손목에 손가락 2개를 대고 10초 동안 뛰는 수를 잰 뒤에 6을 곱하면 된다.

실외에서 걷는다면 빛과 운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선글라스나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해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

▽비타민섭취요법(Vitamin Intervention Therapy)〓브라운 교수가 권장하는 하루 비타민 섭취량은 비타민 △B1(티아민) 50㎎ △B2(리보플라빈) 50㎎ △B6(피리독신) 50㎎ △D3(콜레칼시페롤) 400IU와 △엽산 400㎍ 그리고 미네랄의 일종인 △셀렌 200㎍이다.

이 성분이 들어있는 종합비타민제를 먹거나 단일제제를 사서 섞어 먹되 일일 한계치를 넘어서면 안 된다. 비타민 B1과 B2, B6는 100㎎, D3는 2000IU, 엽산과 셀렌은 각각 1000㎍과 400㎍을 넘지 않도록 한다.

권장량만큼 복용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나 우울증상이 감소되며 활력이 증진된다.

한국비타민정보센터의 윤연정 약사는 “국내에는 비타민 단일제제가 나와 있지 않으므로 이 처방대로 먹기 위해서는 비타민 B군과 C의 복합제제를 먹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종합 비타민을 이 양에 맞게 먹으려면 여러 알을 먹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비타민 A 과잉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

윤 약사는 “이 처방의 실천이 어렵다면 종합비타민제 1, 2알을 매일 꾸준히 먹는 것도 피로회복과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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