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기봉씨, 남양주 포도원서 작은 예술제

  • 입력 2002년 9월 9일 18시 08분


청명한 9월 하늘 아래 펼쳐진 푸른 포도밭. 8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류기봉 포도원은 그냥 포도밭이 아니었다. 시와 노래,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 속 문화 공간, 그 포도밭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흙내음, 솔내음, 풀내음이 밀려 들지요.” (시인 설태수·세명대 교수)

“산림욕은 낮 12시경이 가장 좋다고 하던데, 지금이 바로 그 때네요. 참 좋다.” (시인 겸 화가 남혜숙)

10년이 넘게 포도를 가꿔온 시인 류기봉씨(37)는 이날 오전 11시 자신의 포도밭에서 ‘제5회 작은 예술제’를 열었다. 류씨가 아버지처럼 모시는 시인 김춘수 선생(80)을 비롯해 초대시인 조영서 정진규 이수익 조정권 등 1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100여명의 관객은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솔숲에 모였다.

부천청소년현악합주단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디베르트멘토 1악장으로 예술제의 막이 오르고 김춘수선생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문학의 정체를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란 무엇이냐’와 같은 질문이 아닌가”라며 허허 웃고는 “그러나 반드시 문학에는 현실을 소재로 한 ‘창조’가 있어야 한다. 서정시에서조차 문학은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선생은 미당의 시 ‘귀촉도’를 나직히 읊조렸다.

장옥희(경기 남양주시 양지초등학교 5학년)양은 “유명한 시인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 신기하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회도 관객들에게는 색다른 경험. 현악 선율 위를 투박하게 걷는 듯한, 시인들의 정겨운 시 낭송은 시집을 펴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을 줬다.류기봉씨는 “어느 해인가 김춘수 선생께서 프랑스를 방문하신 뒤 그러시대요. ‘프랑스의 포도밭에서는 문화를 자주 접하지 못하는 마을 주민이 고급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문화계 사람들을 초청해 시낭송, 노래공연 등을 자주 열곤 하더라’고요. 이제는 ‘문화 농업’을 하라는 말씀이셨지요”라고 자신의 농원에서 예술제를 열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오후에 열린 백일장 대회에서 관객들은 솔숲 한 켠에서 또는 포도밭을 거닐며 시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며 모두 작가와 화가가 됐다.

이웃과 함께 참석한 김순미씨(44·주부·경기 성남시)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시와 노래가 잘익은 포도주처럼 가슴에 다가온다”고 감흥을 표현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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