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우범 소묘화전 16일까지…실험정신 돋보여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21분


정우범의 '호숫가의 여인' [사진제공=인사아트센터]
정우범의 '호숫가의 여인' [사진제공=인사아트센터]
대개 연필이나 목탄으로 그리는 소묘는 미술의 기본, 특히 회화의 기본이다. 그러나 소묘화는 연습그림쯤으로 치부돼왔다. 화가 정우범은 이 같은 소묘화 경시 풍조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었다. 수채화가로 유명한 그는 “소묘화는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소묘화야말로 여전히 회화의 중심이고 중심이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소묘화를 그려오고 있다.

그가 인물 중심의 소묘화 80여점을 한데 모아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한다. 80여점을 전시한다는 것은 소묘화전으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기획이다. 우직하게 소묘 작업을 하면서 자신 있게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의 용기도 높이 살 만하다.

그의 소묘화 특징은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기법을 보여준다는 점. 그는 연필 목탄뿐만 아니라 수묵 담채 수채 파스텔 아크릴 잉크 등을 사용해 소묘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했고, 기존의 명암 위주 소묘를 뛰어넘어 문지르기, 번지게 하기, 겹쳐 칠하기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소묘화의 예술성을 높였다. 이를 놓고 한 평론가는 “소묘화의 표현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특히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즉석에서 그린 인물 소묘화가 눈길을 끈다. 이들 그림은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친다. 그것은 단순히 연습용 그림이 아니다.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 느낌이 어렵지 않게 전해온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만난 소녀와 여인의 그림을 보면 차가운 이국땅의 여성을 수묵이나 파스텔로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를 묘한 편안함과 친근감으로 안내한다.

설치미술 비디오아트 등 탈(脫)회화적 미술이 넘쳐나는 요즘 분위기에서 정우범의 소묘화전은 미술의 원시적 생명력, 기본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다. 02-736-1020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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