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역사]“병자호란 원인은 빙하기 때문”

  • 입력 2002년 5월 5일 17시 37분


한일 공동연구팀이 화진포 밑바닥의 퇴적층을 시추하고 있다.
한일 공동연구팀이 화진포 밑바닥의 퇴적층을 시추하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은 국방을 튼튼히 하지 못해 일어난 것일까? 예전의 기후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 원인을 ‘소빙기의 기근과 자연 재난’에서 찾는 국내 학자들이 늘고 있다.

소빙기(1450년∼1850년)때 지구 기온은 중세 온난기(900년∼1450년)보다 1℃ 떨어졌다. 알프스, 캐나다 등 고산지대 어디서나 이 기간 동안 빙하가 확장됐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빙기 때 전세계는 여름철 기온 급강하로 흉년과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다. 특히 소빙기 중 최저 기온을 기록했던 17세기 전반은 전세계적 혼돈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기근과 함께 30년 전쟁(1618∼1648년)이 계속돼 ‘17세기 위기설’까지 나왔다. 중국에서는 1628년에 최악의 ‘산시 기근’으로 농민반란이 일어나 명나라가 망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우박, 때아닌 눈과 서리를 비롯해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이 많았다. 병자호란, 당쟁, 인조반정, 이괄의 난, 장길산의 봉기가 모두 17세기에 일어났다.

한일 공동연구팀이 한반도에서도 소빙기의 증거를 찾아내 지난달 대한지질학회지에 발표했다. 연세대 염종권 박사와 유강민 교수(지질학)는 일본 교토대, 시네마대 연구팀과 함께 7년 동안 화진포와 송지호에 쌓인 퇴적층을 분석해 동해의 해수면 변화를 추적해 왔다.

동해 바닷가의 이 자연호수 밑바닥에 쌓인 퇴적층 성분과 생물은 당시의 환경을 말해준다. 연구팀은 호수에 1만년 동안 10m 두께로 쌓인 퇴적층에 11개의 시추공을 뚫었다.

시추공 분석 결과 해수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두 개의 호수는 최근 1만년 동안 바닷물이 됐다 민물이 됐다를 6번이나 반복했다. 이를 토대로 해수면 변화를 추정한 결과 마지막 빙하기였던 1만년 전에는 동해의 해수면이 18m 낮았으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불어 5500년 전에는 현재보다 2m가 높았다.

그러나 소빙기였던 400년 전에는 현재보다 해수면이 오히려 50㎝∼1m 낮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계의 빙하가 확장하면서 해수면이 낮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바닷물이 현재의 해수면보다 높았을 때 육지를 침식해 만든 테라스식 해안 단구와 파식대, 동굴을 호수 주변과 동해안 일대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냈다.

이처럼 지구의 기온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 데 대해서는 태양 복사열의 변화, 지구 자전축의 변화, 화산 활동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 서울대 이태진 교수(한국사)는 ‘외계 충격설’을 내놓고 있다.

이 교수는 세계 최장의 연대기인 조선왕조실록(1392년∼1863)에 나타난 운석과 유성 충돌 기록을 분석해 ‘천체역학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큰 운석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화구(火球)형 유성이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집중 낙하해 전체 관측 기록 3400여개 가운데 3330개를 차지했다. 특히 17세기 100년 동안에는 무려 1500여개의 유성이 떨어졌다.

이 교수는 “운석 충돌로 먼지가 대기를 덮으면서 태양광선을 차단해 기온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만주족이 남하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처들어온 것도 기온 강하로 남쪽의 곡창지대를 찾아 내려온 것으로 보이고, 일본이 16세기에 전란 상태에 빠져 왜구가 출몰한 것도 자연 재난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400년 전 절정에 달했던 소빙기가 끝나면서 서서히 온도와 해수면이 상승하는 국면이다. 문제는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마치 기름에 물을 부은 듯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세기 동안 지구의 기온은 0.5℃ 상승했고, 해수면이 매년 5㎜씩 상승하고 있다.

연세대 염종권 박사는 “동해는 대한해협의 깊이가 50m에 불과해 해수면이 조금만 높아져도 태평양 난류의 유입량이 크게 늘어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며 “이미 한류성 어종이 동해 연안에서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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