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단어]미국 시민권

  • 입력 2002년 2월 7일 15시 53분


미국 만화 ‘뽀빠이’에는 악당 부르도가 등장한다. 외래어 표기가 정비된 뒤로는 브루투스로 불렸다. 로마 공화정을 부르짖으며 시저 암살에 나섰던 확신범의 이름이 악당 이름으로 차용된 것이다. 브루투스에게 시저는 사실상 양부(養父)였다. 그가 양부를 배신하며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공화제의 뿌리인 시민권 전통이었다.

시민권(civil rights)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등의 특권 신분 ‘시비타스(civitas)’에서 비롯한다. 이들 국가 자유민의 참정권이었다. 로마 시민은 군인으로 전쟁에 나간다는 조건 아래 당당하게 참정권을 얻었다. 로마가 슈퍼 파워가 되면서 시민의 성격은 바뀌었다. 제국이 워낙 커져 제대로 참정할 방법이 없었다. 정복전이 계속될수록 시민은 몰락해갔다. 로마의 자국민화 정책에 따라 정복지 주민들도 시민의 지위를 누리게 됐다.

미국은 로마에 견줄 슈퍼 파워다. 그러나 시민권자들에게 개병제를 요구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 시민은 로마 시민보다 행복하다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많은 이들이 미국 시민권을 원한다. 때로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미국 시민권을 얻는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브루투스의 이름에 오욕이 남아있다면 그가 어떤 이유로든 시저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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