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106주년…연구 결과 잇단 발표

  • 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25분


1904년 佛잡지 '르 뚜르 듀 몽드'에실린 명성황후라고 명시된 사진
1904년 佛잡지 '르 뚜르 듀 몽드'에
실린 명성황후라고 명시된 사진
《최근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에 이어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명성황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 106주년을 맞아 명성황후의 죽음을 둘러싼 학계의 연구성과가 잇따라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명성황후의 사진〓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가 공개한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은 그동안 계속돼온 명성황후 사진 논란과 관련,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잡지 ‘르 뚜르 듀 몽드’에 명성황후 사진을 제공한 사람은 당시 조선을 다녀갔던 아장 박사라는 점에서 사진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아장 박사는 ‘한국여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사진을 싣고 사진설명에 ‘일본 과격분자에 의해 살해된 한국의 황후’라고 명시했다.

이 교수는 “시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현장을 직접 답사한 아장 박사의 열의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설명이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아장 박사가 잡지에 게재한 사진은 국내 학계에 이미 공개된 카를로 로제티(이탈리아 외교관 출신)의 명성황후 사진을 뒷 배경만 변조한 것”이라며 “일본은 1890년대초 명성황후 시해를 위해 미리 사진을 촬영한 뒤 황후 시해후 ‘궁녀의 사진’으로 탈바꿈시켜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빌탈 드 라게리의 저서 ‘한국, 독립할 것이냐 러시아 또는 일본의 손에 넘어갈 것이냐’(1898년)에 실린 명성황후 삽화의 얼굴 모습과 거의 비슷해 진짜 사진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삽화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1895년을 전후해 한국에 체류했던 프랑스 언론인 드 라게리가 명성황후의 사진을 토대로 모사했다고 밝힌 것으로 지금까지 명성황후의 얼굴과 가장 근접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로제티의 저서에 실린 사진

지금까지 명성황후 추정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로제티의 사진이외에 1906년 호머 헐버트, 1910년 이승만 대통령의 저서에 실린 사진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짜 사진인지는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새 사진을 공개한 이 교수는 1997년 로제티의 사진을 명성황후의 사진이라 주장했으나 ‘정장차림의 궁중 여인’이라고 설명되어 있을뿐 명성황후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박에 부딪쳤다. 또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 숭모제 당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저서에 실린 사진을 표준영정으로 사용했으나 이 역시 진짜일 가능성이 낮다.

▽명성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태동〓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는 최근 명성황후의 죽음이 대한제국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한 교수는 “국왕의 국장도 6개월을 넘지 않는게 관례임에도 1895년 10월 8일 시해된 황후의 장례식이 2년 2개월이 지난 1897년 11월 22일에서야 치러진 것은 자주와 독립에 대한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고 그 추진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명성황후의 묘지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왕후의 국장이 여섯 차례나 연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 한 교수는 “고종 역시 황후의 명예회복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벌고 싶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을미사변 1주기에 즈음해 1896년 10월 23일 전장령 박인환(朴寅煥)이 올린 상소에서 “복수를 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하자 고종은 이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을 한 교수는 근거로 내세웠다.

이승만 저서에 실린 사진

1897년대 후반 고종의 칭제(稱帝)운동이 급속도로 가시화되면서 장례는 다시 두 차례 연기됐고 명성황후 서거 2주기에 이르러서는 왕실에 대한 충성이 정점에 달했다. 마침내 1897년 10월 13일 대한제국이 반포됐고 더 이상 장례를 미룰 이유가 없었던 고종은 40일 후 장례를 치렀다.

한 교수는 “명성황후는 죽음으로써 살신성인(殺身成仁)했으며 이로써 명성황후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지난해 12월 서울대 규장각이 펴낸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 國葬都監儀軌)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으며 그 구체적 내용을 담은 저서 ‘명성황후와 대한제국’을 이달 중순 출간한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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