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고학력 두 여성의 '색깔찾기'…"월급봉투엔 내꿈 못담아"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7분


25세가 ‘뜨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20대 중반을 겨냥한 여성잡지가 지난달에 새로 나왔고 외신에서는 ‘20대 중반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25세의 위기(Quarterlife Crisis)’로 진단하기도 했다. 제도권 기업으로의 취업을 거부하고 ‘사이버 마담 뚜’와 ‘신세대 역술인’을 자처하고 자신들의 ‘색깔 찾기’에 나선 두 25세 여성이 있다. 자신이 창업한 기업의 대표이사 겸 ‘인턴사원’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만들어준 가치관인 ‘성공 강박증’을 거부한 채 취미(Hobby)와 직업(Occupation)의 중간단계인 ‘호큐페이션(Hoccupation)’을 즐기며 미래의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미팅 주선 김지경씨▼

“‘미팅’ ‘번개’, 사실 대학생 신분으로는 얼마나 좋은 추억이자 인생 경험입니까. 인터넷이 개입되면서 자칫 음성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만남의 문화’를 건전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 온-오프라인 대학생 미팅단체 ‘알오유(리퍼블릭 오브 유니버시티·www.rou.co.kr)’를 발족시킨 김지경씨(25). 김씨는 대학시절 소개팅 ‘알선’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취미생활이 직업으로 승화되는 것을 꿈꾸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미팅사이트를 열게 됐다.

‘벤처바람이 끝물인데 정신 있느냐?’고 주위 사람들이 많은 우려를 표시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벤처기업이 아니라 ‘문화사업’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오히려 더 실험정신 가득한 코너들이 ‘알오유’를 뒤덮는다. 회원들은 사진이 아닌 자신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려놓고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구애’를 기다린다. 사용자들은 동영상에 단순한 자기소개, 아니면 성대모사나 노래 부르기 같은 ‘개인기’를 담아 놓는다.

동영상이 맘에 들면 바로 상대방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날려 스케줄을 잡는다. 만남에서 느껴지는 것과 ‘글발’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본말이 전도될까봐 아예 채팅코너는 두지 않았다. ‘첫 매듭’을 풀지 못하거나 개인기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김씨를 비롯한 몇 명의 미팅 자키(MJ)들이 실시간으로 온라인 상에서 미팅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김씨는 미국 뉴저지주의 터너플리(Tenafly)고교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원 휴학 중. 만점에 가까운 토플점수, 거창한 학벌 등을 고려해 대기업 취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로의 길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고액연봉을 받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당분간 재미를 느끼는 일에 열중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역술사이트 운영하는 박근희씨▼

“사주팔자 믿을 것 못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범위 안에서는 맞는 것 같아요. 심령학 운명철학 역학 미신 등이 합쳐져 ‘라이프 컨설팅’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역술사이트 ‘토탈오즈스타(www.totalozstar.com)’ 대표이사 박근희씨(25).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역술과 관련한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이 직접 그 프로그램의 탤런트 앵커 인터넷 자키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사주카페에서는 손님들의 사주도 봐주고 있어 ‘젊은 역술인’으로 통한다.

사이트에는 생년월일시를 대입해 본인의 사주팔자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거나 기공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은 ‘도가 선도기공술’ 등 다양한 코너가 마련돼 있다. 외국에서 가져 온 심령사진이나 미확인 비행물체 사진을 모아 놓은 코너도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역술과 무속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박씨는 “국내외 관련 서적을 30권 이상 섭렵했다. 인생의 다양한 사례들을 고찰해 역학을 통계학의 범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는 논리로 당당하게 맞섰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재학 중 미국 UCLA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영어 잘 하니까 언론사나 광고회사에 취직하라고 주위에서 많이 권유하셨죠. 그러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고정 틀에 따라 제 인생을 설계하기가 싫었습니다.”

남들은 10번도 본다는 토익을 한 번도 보지 않은 것도 남다른 자부심의 표현. 자신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협조를 구해 조만간 영어 중국어 일어로 된 역술사이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의 ‘수준 높은 정신문화’를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다.

본인이 운영하는 사주카페와 사이트의 유료 콘텐츠 덕분에 수지는 맞추고 있지만 당장 많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취미생활’, ‘하고 싶은 일’ 이라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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