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18년의 노력…대우학술총서 500권째

  • 입력 2001년 1월 2일 19시 05분


‘반갑다, 500권째 대우학술총서!’

한국 출판사상 최대의 학술총서인 대우학술총서가 2일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주저(主著) ‘해석의 갈등’(양명수 역)를 출간함으로써 500권을 돌파했다. 83년 11월 ‘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저)이 총서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된 후 약 18년만의 일이다.

대우학술총서 500권 돌파는 민음사 아르케 아카넷 등 출판사를 세 번이나 바꾸어 가며 나온 기록이어서 특히 감동적이다. 총서 421권까지 낸 민음사 박맹호(朴孟浩)사장은 총서출판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상업성이 없는 순수 학술총서로 500권을 돌파한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총서를 기획한 사람은 작고한 이용희(李用熙)전 통일원 장관. 정치학자이면서도 ‘우리나라 옛 그림’이란 미술책을 내기도 한 그는 대우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81년 국내에 소외된 기초연구분야가 많다는 현실인식 하에 총서를 펴내기 위한 한국학술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한국학술협의회는 그동안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급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게 하고 책을 사주는 방식으로 약 200억원을 지원했다. 각 학문분야의 최근 동향과 이론을 소개하는 심층연구서인 ‘논저’, 학문간 벽을 뛰어넘어 학제적 교류를 시도한 ‘공동연구’, 학술연구의 근간이 되는 ‘번역’ 등 세 분야로 나눠 지난해 말까지 모두 약 1500여건을 지원했다. 대우학술총서는 이같은 지원의 결과물로 지원과제의 3분의 1수준인 500권을 내게 된 것이다.

총서의 책은 대체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풍수사상’(최창조) ‘문학사회학’(김현) ‘인도철학사’(길희성) ‘일반언어학강의’(소쉬르) ‘과정과 실재’(화이트헤드) ‘폭력과 성스러움’(르네 지라르) ‘앙띠 오이디푸스’(들뢰즈와 가타리) ‘마키아벨리 평전’(리돌피) 등 일부 서적은 지금까지도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86년 ‘한국지질론’(장기홍)이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87년 ‘소립자와 게이지 상호작용’(김진의)가 한국과학상 대상, 89년 ‘한국농학사’(이춘녕)이 월봉학술상, 98년 ‘신제도이론’(송현호)이 자유경제출판문화상, 지난해에는 ‘마키아벨리 평전’(리돌피 저,곽차섭 역)이 가담학술상 번역상 등을 수상했다.

대우재단은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회장이 78년과 80년 두 차례 25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비영리법인으로 부도난 그룹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왔다. 앞으로 ‘대우학술총서 1000권 돌파’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할 지 지켜볼 일이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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