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탈디자인,세상을 바꾼다]反미학의 미학

  • 입력 2000년 12월 3일 20시 02분


◇미추(美醜)에서 호오(好惡)로

‘내가 좋은 것’이 문화적 선택 기준

현대 프랑스의 실천적 지성이라는 자크 아탈리는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미래의 미학은 옳은 것, 순수한 것, 문화적으로 규정 가능한 것을 거부하고,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미학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예측이라기보다도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서구의 전통적인 미학에서 볼 때 아름다움이란 팔등신이라든가 황금비례와 같은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즉 미적 쾌감이란 미적 이데아 안에서 이루어진 형식에서 느껴지는 감성이었다. 이 전통적인 미학이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고급문화라는 스타일로 대중문화와의 의식적인 차별화를 꾀하자 여기에 반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종의 반미학적인 추세, 즉 아름답고 우아한 것보다는 그 반대의 것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내가 좋은 것’, ‘내가 싫은 것’이 문화적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서구의 키치 디자인이나 우리나라에서 현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엽기적 표현 및 패로디적 디자인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양상이다.

◇아방가르드적이었던 스타일

마르셀 뒤상이 1917년 R 뮤트라는 가명으로 전시에 출품한 ‘샘(Fountain)’이란 제목의 작품인 변기(사진)는 반미학적 작품의 효시로 꼽힌다. 이 작품은 일상용품인 변기를 ‘선택’해 여기에 새로운 명칭과 관점을 부여한 것이다. 당시 아방가르드라고 불리며 전시조차 거부되기 일쑤였던 이같은 작품이 이제 우리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인분(人糞)모양의 저금통이나, 패션 디자이너 폴 갈리아노의 모닝 빵 모형을 줄줄이 붙인 모자 등 전위적인 디자인이 더 이상 거부감을 주지 않는 것이다.

스타일의 선택 기준이 호오(好惡)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의 펑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동요되는 법도 없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할 뿐이며 그를 통해 기존의 미학에 반문을 제기할 뿐이다. 이 스타일은 곧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장 폴 고티에, 지아니 베르사체 등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에 의해 상류층을 위한 패션 컨셉이 되면서 디자인의 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미추의 판단 실종

고대 희랍상을 모방한 조각품과 도끼를 든 인형이 무엇인가를 부수는 형상을 중심으로 한 영국 디자이너 칼롬 콜빈의 인테리어 디자인 ‘비너스의 죽음’은 모조품의 조잡성이 비너스가 상징하는 고전미를 파괴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프랑스 디자이너 게로쉬 보네티의 의자 역시 주렁주렁한 가죽 장식으로 원시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 디자인들은 개인의 취향만을 드러낼 뿐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픽 디자인계의 게릴라 집단으로 평가되는 그라푸스 그룹은 온갖 낙서와 더불어 술에 취한 채 한 대 맞아 부은 듯한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로 자신의 전시회 포스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제 멋대로’, ‘자기 좋은 대로’ 전개되는 듯한 현대 문화의 한 단편을 본다.

이런 현상은 광고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근간 우리나라의 광고에서는 메시지가 실종되고 단지 느낌만으로 감각에 어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있다.

◇사회적 질문이 전제되어야

이런 추세는 우리의 문화적 향유가 더 이상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즐기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창조하고 선택하며 즐기는 능동적인 것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상업 문화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계속 그 강도를 높여왔기 때문에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꿈적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부정적인 요소들이 공공연하게 문화 창조의 자원으로 이용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런 태도의 배후에는 역시 디지털 기술의 위력이 숨어 있다. 기계산업 시대의 기술은 대량 생산이나 반복 생산에 적합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원가, 공정, 시간 등 모든 면에서 얼마든지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품종 소량 생산체계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패션 분야만 하더라도 하나의 디자인으로 소매가 짧은 것, 긴 것, 무늬가 있는 것, 없는 것 등 다양한 주문형 생산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같은 여러 요인을 배경으로 개인의 문화적 선택이 ‘미추’라는 기준을 떠나 ‘호오’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우주의 운행 원리처럼 우리의 삶이 다양함 속에서 조화롭게 영위되려면, 개인의 호오에서 출발한 디자인 역시 보편성을 획득할 때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있다.

김인철 (국민대 테크노 디자인 대학원장)

inchul@kmu.koo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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