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데이터 스모그', 정보가 넘치면 인간이 작아진다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34분


▨ 데이터 스모그 / 데이비드 솅크 지음 / 정태석·유홍림 옮김 / 300쪽 1만2000원 민음사

철제 대문에 며칠마다 한번씩 꽂히는 규격봉투 편지가 ‘메일’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화면 가득 글자만으로 채워진 뉴스 몇가지를 아나운서가 읽으면 TV뉴스가 끝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개인용 컴퓨터의 메일박스를 열면 판촉광고를 비롯한 각종 ‘메일’이 가득하다. 인터넷 검색엔진 클릭 하나로 자료가 와르르 쏟아진다. 뉴스는 도심의 전광판에도, ‘맞춤뉴스’로 주문한 메일 서비스 속에도 있다. 바야흐로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된 것이다. 행복한가?

“아니.” 저자의 논지는 간단 명료하다. “과거에 굶주림이 사회적 문제였지만 이제는 비만이 사회적 문제다. 마찬가지로, 정보 결핍이 아닌 ‘정보 과부하’와 ‘과속’이 사회적 정치적 문제다.”는 것.

몇가지 숫자를 인용해 보자. 1971년 미국인은 하루 560개의 광고를 접했으나 20년뒤 이 숫자는 30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종이 소비량은 1940년 이후 40년 동안 세배가 늘었고, 다시 세 배가 느는 데는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1965년 미국에서 TV광고 1편의 길이는 평균 53초였지만 30년 뒤에는 25초로 줄었다. 같은 기간 뉴스속 인터뷰의 평균 길이는 42초에서 8초로 줄었다. 케이블 채널이 폭증하면서 3대 네트워크의 시청자 점유율은 1978년 90%에서 1988년 60%로 떨어졌다.

이 모두는 90년대 이후 세상을 뒤바꾸어 놓은 인터넷의 영향력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정보의 양과 속도는 각각 매년 두 배씩 늘어나고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정설이다.

“정보가 많으면 좋지, 왜…”라고 생각되는가. ‘데이터 스모그’라는 제목에 저자의 문제제기가 뚜렷이 드러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스모그처럼 목표를 명료하지 않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

정보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비용이 늘어나면서 지나치게 많은 의견들이 동시에 표명된다. ‘10대 임신률의 증감’과 같은 객관적 통계에조차도 대립되는 정보가 난무하니 대중은 ‘어떤 의견이 지배적이 되는지’ 기다리게 된다. 다수결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보과잉 시대에는 ‘진실보다 자극’이 선택을 받기 쉽다. 뉴욕 시장 줄리아니가 지지자들에게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한 것이 “입닥쳐”로 왜곡돼 선거전에 타격을 준 것은 좋은 사례다. 데이터 스모그가 증가할수록 정보들은 더욱 자극성을 띠며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 하지만 오히려 스모그의 총량을 늘릴 뿐이다.

삶의 질을 위해서도 정보폭증은 유해하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정보과잉은 명상의 순간을 밀어내고 대화와 오락을 망친다. 사람들이 소비자와 시민으로서 덜 숙고하도록 하며 스트레스와 주의력 산만을 가져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파편화된 정보를 외면하고 스스로 정보 편집자가 되어 ‘정보 다이어트’를 하라고 주장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해 정보 제공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고, 정부에 ‘데이터 과잉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요구하라고 권한다.

저자의 권유에 따르기만 하면 가치 실종의 세상에서 확실한 키를 쥘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된 데이터 폭주에 대해 개인차원의 역량만을 요구하는 해답이 현실감있는 대안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정보의 ‘탈중심화’가 여론조작의 가능성을 줄이고 시민의 현실참여를 늘리는 등 긍정적 작용을 하는 부분을 애써 언급하지 않는 점도 부자연스럽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 데이터 스모그 극복방법

△TV 시청시간을 줄이고 대신 영감을 주는 책을 사서 읽는다.

△실질적인 지식을 주지 않는 ‘조각난 뉴스’를 피 한다.

△호출기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쓸데 없는 인터넷 뉴스 그룹의 가입을 해지한다.

△스팸메일과 구매권유 전화에 대해 ‘앞으로 방해 하지 말것’을 요구한다.

△컴퓨터 등의 업그레이드에 매달리지 않는다.

△정보에서 벗어난 ‘데이터 단식’ 시간을 갖는다.

△스스로 자기 정보의 편집자가 된다는 마인드를 갖는다.

△자기에게 투입된 정보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인식한다.

△특정분야의 정보 제공 표적이 되지 말고 넓은 지식을 섭취한다.

△데이터 쓰레기에 저항할 수 있도록 정부에 ‘데이터 정숙 지대’를 요구하며 정보 격차 해소에 관해 투자할 것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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