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대 신의진교수 "아이는 느리게 키우세요"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50분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붙잡고 글자를 들이밀며 “이게 뭐지?” 물으면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는다. “몰라.”

엄마는 “그러지 말고 잘 봐봐”하고 아이를 구슬리며 어떻게든 가르치려 든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안시키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드디어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는 겨우내 입던 내복을 여름이 다 될 때까지 벗으려들지 않는다. 벗기려 했더니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결국 아이는 반바지 안에 내복을 입고 유치원에 갔는데….

진땀 흘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한 이 엄마는 연세대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세브란스병원 전문의인 신의진씨(36)다. ‘전문가’도 아이 기르는 데는 우리와 똑같이 애먹는구나, 싶어 내심 ‘흐뭇한’ 생각도 든다. 그가 최근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는 책을 써냈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를 느리게 키우라니?

“아이교육에도 투자한 만큼 뽑아내겠다는 자본주의적 발상을 지닌 엄마들이 많지요. 빨리빨리, 많이 가르치겠다는 뜻이지만 정말 비과학적이고 옳지 않은 일입니다. 21세기에 맞는 아이를 키우려면 그냥 내버려두어야 해요.” 신교수는 젖먹이 때부터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조기교육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고 단언했다.

“21세기엔 주체적이고 창의적 인간이 제몫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해보고, 실패하고 바꾸어 해보면서 창의력이 자라나요.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틀’을 짜야할 시기에 내용물을 집어넣으려고 안달이지요.”

아이에게 적합한 ‘틀’을 짜주기 위해 신교수가 강조하는 방법은 ‘왜?’라고 묻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아이와 싸우지 말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대면서 아이의 지적 논리적 능력이 발달하고 사회성과 사고력이 자라난다. 하지만 직장다니는 엄마가 노상 아이와 붙어서 ‘왜’를 물을 수는 없는 일. 그는 “내 경우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내준다”며 “함께 하는 시간의 질뿐만 아니라 양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교수가 말하는 ‘아이를 느리게 기르는 세가지 방법’.

1. 화가 날 때는 절대로 혼내지 마라. 이유를 모르면 어른이 참아라.

2. 아이 기르는 데는 가슴뿐만 아니라 머리도 중요하다. 이웃에서만 모든 정보를 얻지 말고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찾아라.

3. 아이의 성장엔 ‘시간표’가 따로 있다. 내 아이의 성장 시간표를 믿고 방해요소를 제거해주도록 노력하라.

하지만 무작정 느리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신교수는 △어떤 문제행동이 두세달 계속될 때 △갑자기 폭력적이거나 잠을 못자거나 하는 문제 행동이 심각할 때는 당장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