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믄화가 흐르는 한자]處暑(처서)

  • 입력 2000년 8월 23일 09시 27분


處―끝날 처 暑―더위 서 候―날씨 후 遷―옮길 천 濕―축축할 습 架―시렁 가

節氣란 天時와 氣候의 변화에 따라 1년을 24개의 시기로 나눈 것으로 節候(절후)라고도 한다. 천문학상으로는 지구의 공전 궤도를 24개 지점과 일치시킨 것이다. 즉, 黃道 360도를 24등분하여 15도마다 하나의 節氣를 두어 24節氣를 얻고 이 중 6節氣를 한 계절, 사계를 1년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1년에 모두 24개의 節氣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春秋時代부터 春分(춘분) 夏至(하지) 秋分(추분) 冬至(동지)를 두었으며 24節氣가 확립된 것은 秦漢(진한)시기라고 한다.

이처럼 수천년 아득한 옛날에 節氣를 두어 농사는 물론 일년 생활의 길잡이로 삼았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智慧가 아니다. 그것도 현대과학에 비추어 조금의 錯誤(착오)도 없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영어사전을 보면 한 개의 單語에도 여러 개의 뜻이 있듯 漢字도 그렇다. 朝는 ‘아침’이라는 뜻 외에 ‘왕조’ ‘향하다’라는 뜻도 있으며 道 역시 ‘길’ 외에 ‘이치’ ‘도’ 심지어는 ‘말하다’는 뜻도 있어 그 뜻이 무려 50개가 넘는다. 漢字가 오랜 기간에 걸쳐 變遷(변천)해 오면서 뜻도 덩달아 불어났기 때문이다.

處를 보자. ‘곳, 살다, 거처하다’는 뜻도 있지만 놀랍게도 ‘숨다, 끝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處暑의 경우 굳이 해석한다면 ‘더위가 끝난다’는 뜻이 된다.

處暑는 24절후 중 가을에 속하는 것으로 立秋와 白露(백로) 사이에 있다. 陰曆(음력)으로 7월, 陽曆(양력)으로는 8월 22, 23일쯤 된다. 한여름의 삼복더위도 이 때가 되면 기세가 꺾여 선선한 날씨가 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사실 말이 立秋지 老炎(노염)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그러던 것이 處暑가 되면서 무덥던 여름도 끝나고 시원한 가을이 온다는 뜻이다.

과연 處暑가 되면 서늘한 기운을 실감할 수 있다. 기세등등하던 모기의 등쌀도 한풀 꺾이고 가을 햇살에 곡식과 열매가 잘 영그는 일만 남았다. 자연히 농촌의 일손도 비교적 한가로운 때가 되면서 장마철 濕氣(습기)찼던 장을 열어 이불이나 옷을 널어 말린다든지 선비네들은 書架(서가)를 정리하여 책을 꺼내 말리기도 했다. 지붕 위엔 빨간 고추가 널리고 담장의 호박이 노란색을 머금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볼 수 있는 농촌의 한가로운 情景(정경)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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