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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의 문명과 디자인]뱀-나가-사탄

입력 2000-05-29 19:28업데이트 2009-09-2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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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똑 같은 사물을 두고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우리 시대를 휩쓸고 있는 이성과 합리주의라는 것도 결코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양 소위 선진국이라는 데서 그것을 구하려고만 한다. 그것도 전체적인 작동원리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베끼려든다. 그나마 먼저 베낀 자가 큰소리치는 세상이니 ‘빨리빨리’란 조급병까지 생겨났다. 오늘의 위기는 어쩌면 이러한 일들을 무심코 저질러 온 우리의 업보일 수도 있다.

이번 주제는 뱀이다. 사실 뱀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동물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문화권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를 꾀어 원죄를 짓게 했다는 ‘창세기’의 이야기에 따라 ‘사탄’이라 부른다. 지독한 저주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출애굽의 길을 떠났던 고대 이집트에선 투탄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뱀은 고귀한 왕관의 정면을 장식했다(이를 ‘우라우스’라 불렀다). 왕권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졌던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클레오파트라도 즐거운 마음에서 자신의 몸에 뱀을 칭칭 감곤 했다. 그 모습은 조각이 되어 지금 바티칸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마야-잉카서는 최고의 神▼

멕시코의 마야문명권에서도 뱀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유카탄반도의 치첸이차에는 ‘쿠쿨칸’(마야어로 뱀이란 뜻)이란 이름의 피라미드가 있고, 멕시코시티 교외의 테오티우아칸 유적엔 목에 깃털을 단 뱀(‘케찰코아틀’이라고 한다)이 조각돼 있다. 이들에게 있어 뱀은 하늘과 땅을 통합하는 신이었다.

24m 높이의 쿠쿨칸 피라미드는 뱀에 대한 마야인들의 극진한 애정을 건축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의 입구 양쪽에 커다란 뱀 머리 조각을 세워놓았을 뿐 아니라 뱀 몸통으로 상승하는 돌난간을 만들고, 꼬리로는 정상의 제단 들보를 꾸몄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데, 무엇이 부족한지 태양이 피라미드 위에 서게 되는 매년 7월 16일 오후 3시, 그 두 마리의 뱀이 춤을 추도록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그날이 오면 그 환상의 장면을 보겠다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피라미드 앞 광장은 만원을 이룬다고 하니 알만 하지 않는가.

잉카문명권의 쿠스코, 에게문명권의 크레타 등지에서도 뱀 숭배 흔적을 볼 수 있으나 그 극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다. 프랑스의 젊은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처음 본 순간 “솔로몬 신전이나 비교될까. 정글속에는 그리스나 로마의 그 어떤 유적도 따를 수 없는 장엄한 유적이 숨어 있었다”고 감탄해 마지 않았던 곳이다.

▼뱀숭배의 극치 앙코르와트▼

사원을 이루는 5개의 첨탑은 힌두 신화에서 지상의 중심이자 신이 산다는 성스러운 산인 메루산을, 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벽(周壁)은 장대한 히말라야를, 주벽 바깥의 해자는 깊고 넓은 대양을 각각 상징한다는 앙코르와트. 천상의 요정 압사라의 매혹적인 댄스 장면을 그린 얕은 부조, 앙리 파르망티에란 프랑스 고고학자가 ‘달빛이 빛나는 밤에 마주 보는 사면인물상은 정말 신비스럽고 낭만적’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던 바욘사원에 임립(林立)한 그 사면인물상. 실물 크기의 코끼리 부조 등 최고의 신기(神技)를 부려 만들고 새긴 건축과 조각이 한데 어울려 장관을 펼쳐내는 앙코르와트는 지금도 여전히 신비감과 황홀함을 선사한다. 특히 해질 무렵 그 일대에서 제일 높다는 프놈바켕 언덕에 올라 밀림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앙코르와트를 바라볼 때의 그 신비스런 모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도처에 뱀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뱀이 이 앙코르와트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 가장 확실한 물증은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몇 개의 커다란 ‘나가(Naga)’ 조각이다. 나가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코브라로 강과 비(雨)를 주재하는 앙코르왕국의 최고신이었다. 뱀이라면 징그럽다는 생각이 앞설 텐데 나가 조각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다정스럽기까지 하다.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일구었던 크메르인들은 나가가 벼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과 비옥한 땅을 선사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손을 놓고 풍년이 들기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앙코르 왕조가 들어선 11세기 중엽, 도성 좌우에 거대한 ‘바라이’(인공저수지)를 축조하여 물 걱정을 없앴고 3모작까지 성공했다. 그 힘은 바로 나가에서 왔다고 생각한 그들은 거대한 앙코르와트를 건립하면서 나가 조각을 그 입구에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앙코르(Angkor)란 말도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따왔다. 나가라는 ‘나가(Naga·뱀)’와 ‘라(Ra·산다)’의 합성어이므로 결국은 뱀이 사는 곳이란 뜻이 아닌가. 이만큼 앙코르는 뱀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나가'신앙 원산지는 인도▼

하지만 나가 신앙의 원산지는 크메르가 아니라 지금도 피리를 불어 춤을 추게 하고선 돈을 받는 인도로, 그 주인공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이었다. 드라비다족은 벼농사를 처음 시작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았던 가야는 바로 그곳으로부터 벼농사 기술과 철기문화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가야(Kaya)’란 지명도 드라비다어로 ‘마을’ 왕국‘ 등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 가야인들이라 드라비다족의 뱀 숭배 풍습도 받아들었는데, 폐사가 된 김해의 명월사에는 뱀을 새긴 조상(彫像)이 있었으며, 지금도 ’가락태조왕릉중수기념비‘에는 뱀 조각의 흔적이 남아 있다.

▼多神문화 배척의도 담겨▼

뱀은 이처럼 철저하게 물과 땅의 비옥함, 그리고 벼농사를 상징했다. 한마디로 농경문화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문화는 다신(多神)을 섬기는 속성을 갖고 있다. 유목민 출신의 히브리인들이라고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다신의 문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게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뱀을 인간을 꾀어 타락시킨 사탄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인간은 영양소를 섭취하여 물질적 에너지를 생성시키지만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또 어느 정도의 집중력으로 투입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문화적 에너지다. 물질적 에너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 없느니만 못 하다는 데서 문화적 에너지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는 다름 아닌 상징체계에서 나온다. 그래서 유목문화권에서는 뱀을 저주의 대상으로, 농경문화권에서는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각기 자기네 고유의 삶의 방식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권삼윤(문명비평가)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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