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애국혼 살아있는 전설" 직계손자 안웅호박사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안중근(安重根)의사는 죽지 않았습니다.”

안중근의사 순국 90주년을 맞아 10년만에 고국을 찾은 안의사의 유일한 직계손자 안웅호(安雄浩·67·사진)박사는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를 만나 수십년간 가슴 깊이 묻어뒀던 화두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인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고귀한 뜻은 점차 망각해가면서 그분의 유해나 서필, 문서기록 등의 물질적인 유산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순국은 조국독립뿐만 아니라 동양의 평화와 세계안녕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안중근의사 유해발굴’ 문제로 들뜬 국내 분위기에 대해 이같이 일갈하면서 “한국인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할아버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박사는 “오히려 일본인들이 안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바로 뤼순감옥에서 보여준 안의사의 기개와 민족을 초월하는 이상 때문”이라며 “우리가 정말 찾아내야 할 것은 바로 이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1933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안박사는 광복후 49년 일시 귀국했다가 52년 미국으로 건너가 심장전문의로 성공했다. 광복전에는 중국땅에서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광복 후에는 미국 이민생활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곳에 살든 ‘안중근의 손자’였다.

“저는 평생 할아버지 영혼의 그늘 아래서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살아 왔습니다. 제가 속한 곳은 한국도 미국도 아닌 바로 안중근입니다.”

그는 평생 이런 강렬한 자의식을 지녀오면서도 우리말을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할아버지의 영혼의 목소리를 전달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이번 귀국길에는 5년여의 준비 끝에 할아버지의 영혼의 메시지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주 미국에서 출간한 ‘인간성의 위기’(Crisis of Humanity)라는 영문판 서적이 바로 그것. 그는 이 책에 대해 “할아버지와의 영혼의 대화를 통해 고통받는 인류의 영혼을 치유하고 평화와 휴식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라며 “이 책이야말로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할아버지를 ‘애국자’라기보다 ‘전설’이라고 표현하기를 즐기는 안박사는 26일 안의사 순국 90주년 행사에 맞춰 이 책 1000권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 기증하고 한국어판은 물론 일본어판까지 출간할 계획이다.

안박사는 안의사 둘째아들의 1남2녀중 외동아들이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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