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김영사)에서 시장근본주의와 투기자본의 무정부성을 비판했던 세계 금융황제 조지 소로스는 이 책에 대해 “점점 심화돼 가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에 대한 대단히 뛰어난 분석이다. 세계 경제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험에 대한 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1930년대 대공황을 겪고서야 케인스주의로 패러다임을 바꿨을 만큼 전통의 관성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는 그레이교수의 지적이다. 따라서 그는 인류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위험을 미리 인식하고 초국가적 기구를 통해 현명한 길을 모색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전망한다.
이에 비해 아키히코교수는 ‘새로운 중세:21세기 세계시스템’(지정)에서 탈냉전 후 미국의 역할뿐 아니라 각국의 국가 기능도 약화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초국적 자본 이동이 늘고 국경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국제기구, 다국적기업, NGO 등의 상호협조가 필요해 지고 이로 인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등장했던 ‘근대 국가’의 기능이 쇠퇴한 ‘새로운 중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중세’란 개념은 1960∼70년대에 아놀드 월퍼스나 헤들리 불 등이 제기한 바 있다. 당시에는 시대상황과 맞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아키히코교수가 시의적절하게 다시 제기함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전세계를 전근대, 근대, 탈근대(새로운 중세)로 삼분해서 후진사회가 점차 탈근대사회로 발전해 간다는 관점은 역시 근대적 발전론의 한계 안에 있다.
또한 탈근대사회로 변화가 진행되기보다는 그레이교수 등의 지적처럼 ‘20 대 80’의 분화가 심화되리란 주장에 대해 뚜렷한 반론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자인 고려대 평화연구소 이웅현연구위원은 “탈냉전 후 21세기를 전망하며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미국적 자본주의의 승리를 예상하고, 새뮤얼 헌팅턴이 미국적 시각에서 종교 문화의 갈등을 중시한 데 비해, 아키히코교수는 국가의 약화에 초점을 맞춰 탈근대적인 중세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