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한국인류학 백년'

  • 입력 2000년 1월 8일 0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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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지음/일지사/498쪽, 2만원▼

인류와 인류문화의 기원 특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 인류학. 인류학에는 체질인류학 문화인류학 언어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등이 포함된다. 최근엔 사회인류학 종교인류학 교육인류학 건축인류학 음악인류학 등으로 연구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인류학의 중요성과 인류학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의미한다.

인류학자인 전경수 서울대교수(51)가 펴낸 이 책은 한국 인류학 100년사를 체계적으로 되돌아본 최초의 저서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 인류학의 시발점은 구한말 관료였던 고의준이 ‘사물변천의 인류학적 방법’이란 논문을 발표했던 1896년.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인류학 100년을 과감하게 비판한다. 비판의 초점은 현재의 한국 인류학이다. 저자는 한국인류학이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분야는 체질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인데도 한국의 인류학은 오로지 문화인류학에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이 불균형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국 인류학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사람이란 몸과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존재다. 사람을 연구한다는 인류학은 몸을 보려는 체질인류학과 마음을 보려는 문화인류학의 융합으로 가능한 것이다. 양자의 통합이 인류학 연구의 요체다.”

저자의 비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학계는 민속학계와 밥그릇 싸움만 했고 고고학계와는 교류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연구한다는 체질인류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고고학 등이 따로 노는 모순에 빠졌다는 지적. 한국에서의 인류학은 한국인류학이 아니라 그저 서양 추종의 문화인류학에 불과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또한 한국 인류학의 정체성 위기를 가져온 60대 선배 인류학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를 한국인류학의 1세대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에서 민속학 등을 연구했던 손진태 송석하가 한국인류학의 1세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의 60대 인류학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민감한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의 과감한 비판은 비판 부재의 우리 학문 풍토에 있어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인류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가 비판하는 내용은 이 땅의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극복해야할 과제다. 학계는 건강한 논쟁으로 적당히 소란스러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 소란스러움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몫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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