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78)

  • 입력 1999년 11월 22일 19시 11분


지난번에 우리 숙소에 오셔서 언니도 한번 본적이 있는 정기헌씨 생각나지요? 그는 나의 동갑내기이자 동지이기도 했답니다. 그는 국민학교 중퇴자예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중국집 배달에서 마찌꼬바 시다까지 안해본 일이 없대요. 열 여섯 살 적에 작은 사고를 치고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검정 시험으로 중학과 고교 졸업증을 땄어요. 불행중 다행이지요. 아마 아무리 극악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과 지적인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른가봐요. 그는 여기 입사한지 삼 년이나 됐는데 알아주는 숙련공이지요. 우리가 전태일의 삶을 얼마나 감동 깊게 공부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나는 수많은 전태일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이들은 과거의 노동자가 아니예요.

처음에 입사해서 그는 나의 조장이었어요. 어느날 내가 그에게 어쩌나 보려고 우리들의 ‘새 길’이라는 팜플렛을 주었더니 바로 이튿날 점심 시간에 내게 쪽지를 건넸어요. 그건 메모지에 불과했지만 팜플렛을 읽어 본 소감을 적은 것이었어요. 일반 노동자들이 보기에 너무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고 생활 반영이 안 되어 있다든가, 노동 시간과 임금에 대한 해설은 최근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든가, 되도록 정치적 문제의 직접적인 언급은 일반 노동자들이 의심을 하니까 피해 가는 게 낫다든가 하는 지적들이었는데 저는 놀랐죠. 팸플릿을 나누어 줄만한 사람들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기헌이가 자기가 직접 하겠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그가 속한 등산회에 삼십 부 정도를 들려 주었는데 우리 학출들을 정기 산행에 나오도록 해주었지요. 산에 가면 적당한 코스를 오르고나서 점심을 먹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요. 자연스럽게 회사 이야기도 나오고 조합 얘기도 하게 되었어요. 이들은 거의가 우리와 같은 이십 대였고 나이 많은 사람이라야 삼십 대 초반이 대부분이라 결속력이 강했지요. 나는 기헌이와 친해졌어요. 그리고 그가 소개한 신자 언니하구두 속을 터놓을만큼 가까워졌어요. 신자언니는 기업들이 고용과 취학을 보장한다며 세운 야간학교를 나왔어요. 여공들 중에서는 공장 경험이 제일 많았고 기능도 뛰어나 어린 여공들에게서 신뢰를 받고 있었지요. 우리 친목회에서는 공장 안의 여론을 반영하는 소식지를 내기 시작했어요. 작년 봄에 노학연쪽에서 논의가 되어 우리 중에 두 사람이 선도투를 하게 되었어요. 저와 다른 여학생은 검거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주민증으로 취직을 했지만 위의 두 사람은 시쳇말로 위장취업이었기 때문에 언제 노출이 될 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뒤에서 그들의 투쟁을 받쳐주는 역할을 맡았죠. 우선 유인물 수천 장을 준비해서 회사의 곳곳에 한묶음씩 놓아두고 일부는 식당 출입구에서 드나드는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어요. 점심시간이 되어 군중이 제일 많이 자리에 앉은 때가 열두 시 반 경이었는데 그들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가 유인물을 낭독했어요. 우리는 곳곳에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의 선창에 구호를 외쳤지요. 관리자들이 달려와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모두 야유를 보내고 휘파람 불고 했어요. 그렇지만 일반 노동자들은 그 이상의 적극적인 동조는 하지 못했습니다. 회사측에서 그들이 노동자로 위장한 빨갱이 학생 데모꾼들이라고 현장에서 매도했기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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