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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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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사색, 그 깊은 심연으로 이끌어주는 원로 종교철학자의 철학적 에세이집. 혼탁한 시대, 인간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성(理性)중심의 서양철학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동양철학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 철학의 의미를 깊이있게 탐구해온 인물. 84년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물러난 이후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동양고전과 성경을 강독해오고 있다.
‘생각 없는 생각’이란 제목부터가 형이상학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왜 생각(사유) 없는 생각인가? 사유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유에 갇혀 허둥대기 일쑤다. 그 사유의 굴레를 벗어날 때, 즉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사유와 진정한 삶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무지(無知)의 지(知), 무행(無行)의 행(行)을 강조한다. 나를 바라보되, 곧 나를 버리라는 말이다. 저자의 진지한 형이상학적 사색은 결국 동양철학의 무위자연으로 이어진다.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함도 이 책의 또다른 매력. 독자들은 서양철학의 흐름과 동양철학의 핵심개념을 어렵지않게 접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왜 무(無)를 넘어서는 존재를 갈망했는지’, 니체는 ‘왜 사유의 허구를 간파하고 신의 죽음을 외쳤는지’ 등등.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철학개설서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그러나 꼼꼼하게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의 의도와 달리 자칫 형이상학적 사유와 언어에 갇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이미 초월적이다. 엄밀히 보자면 초월적인 사유는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초월성을 상실한다. 그게 언어의 한계다. 이럴 경우 언어보다 직관이나 상상력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철학이론보다 한 편의 좋은 시가 더 철학적이고 초월적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책은 끊임없이 초월을 설명한다. 그 설명의 언어가 독자들의 초월적 상상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미덕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생각의 깊이가 부족한 오늘날 진정한 사유와 고민의 기회를 제공하는 흔치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