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연구 현주소]천년전 동북아 호령했던「비운의 왕국」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4분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서기 8,9세기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왕국. 그러나 지금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비운의 이름,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渤海·698∼926). 올해는 그 발해 건국 1천3백년이 되는 해다. 24일엔 일본 앞바다에서 발해인들의 해상무역항로를 탐사하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강풍을 만나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들이 영혼을 바치면서까지 찾으려했던 ‘발해의 꿈’은 과연 무엇인가. 발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고구려 후예인 대조영이 고구려인과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후 고구려 옛땅 계루부지역의 동모산 기슭에 나라를 세우니 국호는 진국(震國), 연호는 천통(天統)… 이후 국호를 발해로 고쳤고….’ 이렇게 배워온 발해. 하지만 그뿐, 발해는 그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 발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나 연구수준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그 현실은 연구인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국내의 발해연구자는 10명 이내.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 주변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 그래서 중국이 ‘발해는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 세운 나라, 당나라에 예속된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해도 마땅한 대책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물론 발해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연구는 좀더 필요하지만 발해가 결코 중국사일 수 없다는 점은 각종 문헌 및 발굴자료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규철 경성대교수(발해사)는 “다수의 말갈은 고구려 유민이다. 말갈이란 말은 말갈족에 국한되지 않는 하나의 범칭이었고 이는 일부 중국 학자도 인정하는 점”이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발해는 영영 중국사로 편입되고 말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송기호 서울대교수(발해사)는 “앞으로 우리는 발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강도높은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한반도 남쪽은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연고권을 주장하고 북쪽은 중국이 발해를 내세워 그 연고권을 주장한다면 우리 땅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라며 발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에서 발해는 왜 이토록 천대받아온 것일까. 문헌사료가 절대 부족하고 고려시대 이래로 발해를 외면해온 잘못된 관행 탓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통일신라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 8,9세기를 ‘남북국시대’라 칭했던 것처럼 발해는 이제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당당히 돌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발해연구 지원과 일반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임상선 서울시립박물관전문위원(발해사)은 “정부가 발해연구 프로젝트를 만들어 젊은 사학도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중국지역의 발해유적을 답사하는 관광상품 개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가 기획하고 있는 발해 국제학술회의, 한-러 발해유적발굴 공동보고서 간행 발해전시회 발해문화대학 강좌개설 발해유적답사 등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1천년이 넘도록 우리 역사에서 소외됐던 발해. 건국 1천3백주년을 맞은 올해가 ‘새로 쓰는 발해사’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 더이상 주저할 때가 아니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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