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이번엔 우리가』『다음엔 너희가』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29분


지구촌에서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대표적 민족으로 여행전문가들은 한국인과 브루퉁족을 꼽는다. 브루퉁족은 프랑스 서쪽 브루타뉴 반도에 사는 소수민족.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카페나 식당에서 서로 돈을 내겠다고 싸우고 심지어 멱살잡이까지 하는 ‘인정많은’ 브루퉁인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인은 그 ‘비(非)더치페이 문화’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한 카페. 학원강사 서모씨(28)는 대학친구 3명, 후배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술값은 6만원. 친구들끼리는 나눠내도 후배들은 열외를 시켜주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엔 한 친구가 후배들에게 노골적으로 “너희는 안내냐”고 물었고 후배들도 기분나쁜 기색없이 “아, 내야지요”라며 지갑을 열었다. 심지어 가정집에서 모이는 부부동반 모임에도 더치페이가 적용된다. 회사원 이모씨(34)의 고교동창 5명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당 음식장만비 명목으로 회비 4만원을 내고 친구집에서 망년회를 했다. 이처럼 더치페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더치페이는 서양식의 철저한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특히 직장 동료처럼 매일 대하는 사람들끼린 가급적 덜 야박한 방식을 선호한다. LG그룹 박정숙씨(21)는 “점심식사 때 더치페이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참석자 전원이 똑같이 나눠내는 서구식 더치페이보다는 서너명이 나눠 내고 다음날엔 전날 계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갹출해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회사원 전상연씨(20)도 “자기가 먹은 음식값을 앉은 자리에서 각자 내놓는 것은 좀 딱딱하고 어색하다”며 “앞으로 더치페이가 확산돼도 우리 문화에선 ‘이번에는 우리 셋이서 낼테니 다음에는 너희 셋이 내라’는 식의 나눠내기 방식이 지배적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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