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갤러리는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짚어본 「전환의 공간전」 「독일 뷔르트미술관소장전」 등 대규모기획전, 이상범 이상욱 등 작고작가전, 전혁림 김흥수 등 원로작가전, 피카소 미로 등 외국유명작가전, 김창열 이우환 등 재외작가 고국전, 이밖에 「2백인 작가 1호 그림전」 등….
하지만 이같은 양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폭발적인 이슈가 없었다는게 전반적인 평. 모든 전시회가 비슷비슷한 동어반복이었다.
경기침체는 당연히 미술시장도 썰렁하게 만들었다. 개인들의 미술품투자가 줄었다. 화랑들은 판로를 열기 위해 그림값을 내려야 했다. 대형건축물의 건축비 1%를 미술장식품에 쓰도록 한 규정이 0.7%로 깎이면서 미술품의 판로는 더욱 좁아진 셈이 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외환위기로 해외작가 초대전이 잇달아 취소됐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 현대미술학회가 6.25이후 한국현대미술문화형성에 대한 두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한국미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세미나가 많이 열렸다. 한국근대미술의 도입과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기획전 「근대를 보는 눈」도 같은 맥락.
97광주비엔날레는 80만명의 관람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외형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계유수의 다른 비엔날레와 무엇이 다르냐는 정체성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강익중이 특별상을 받는 등 한국미술의 잠재력을 보였다.
〈이원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