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아들의 첫 봉급

  • 입력 1997년 2월 11일 20시 17분


아들이 올해초 취직을 한 뒤부터 일주일 단위로 주어오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도 이제는 사회인이 됐으니 더 이상 용돈을 안주어도 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아직 봉급날까지는 여러 날이 남아 있어 그동안 용돈을 어떻게 마련해 쓰는지 궁금했다. 『취직이 된 뒤부터는 용돈을 주지 않았는데 점심값이며 차비는 뭘로 하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순간 아들은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며칠전에 봉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한달분의 봉급 60만원에서 세금 떼고 신용보증 보험료 떼고 50만원이 안되는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입사일이 1월6일이어서 2월에나 봉급을 받을줄 알았는데 벌써 받았다니….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왜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아무리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해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짐을 억제할 수 없었다. 30년전 검찰청 서기보로 취직, 첫 봉급을 받았을 때 나는 봉투째 아버지께 갖다드렸다. 대견한듯 흐뭇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지금도 선하다. 아버지는 할머니 큰어머니 큰아버지와 가까운 일가 친척들에게 붉은색 내의를 선물하라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봉급 중 얼마를 적금에 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기를 1년 가량 하다가 장가를 들고 분가를 하면서 비로소 내 봉급을 직접 관리하게 하셨다. 그런데 내아들은 첫 봉급을 받고도 말 한마디 않고 혼자 쓰고 있으니 너무도 섭섭하고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아버지가 네 봉급 다 뺏을까봐 그랬느냐』 노골적인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차비 점심값 그리고 친구들 만나… 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나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아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당장 회초리라도 들고 싶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첫 봉급이 중요한 것이다. 그동안 나는 가급적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해 왔다. 직장도 신부감도 아들이 좋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회초리를 들기엔 너무 커버린 아들. 뒤늦게 닦달한다고 뾰족한 수가 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실망끝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봉급부터는 봉투째 가져오너라. 아버지가 세상을 더 많이 살았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당분간은 나와 먼저 의논하도록 해라』 김문영(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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