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프랑스의 『쉬는 병』

  • 입력 1997년 1월 11일 19시 55분


지난 크리스마스무렵 친정인 프랑스에 2주정도 다녀왔다. 이젠 한국에서 산 지도 5년이 되고 남편만나 결혼한 지도 4년이 됐다. 2년만에 가서 그런지, 내가 한국사람이 되고 있어서 그런지 프랑스의 요즘 모습, 특히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반발을 느낀 점은 프랑스사람들의 「쉬는 병」에 대해서다.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프랑스는 휴가기간이 제일 많은 나라다. 학교에서는 방학기간이 18주이고 직장인들도 보통 5주정도를 휴가기간으로 보낸다. 상점은 주말에 쉴 뿐 아니라 평일에도 오후6시나 7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24시간 편의점은 법으로 금지돼 있어서 그 후에는 물건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보다는 개인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잦은 파업사태에서도 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생활에 영향이 오거나 불편을 주는 일이면 그 영향력의 주체가 국가이든 기업이든 민감하게 반발한다. 이때문에 프랑스의 기업들이 프랑스 밖에서 다른 나라의 기업들과 경쟁했을 때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많은 실정이다. 그곳에서 들은 얘기지만 이번에 한국과 마찰이 생긴 대우의 톰슨 멀티미디어사 인수 백지화과정도 내막적으로는 한국기업이 인수해 경영할 경우 예상되는 근로강도와 공격적 한국식 경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심한 거부감이 중요한 이유중 하나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많은 시간을 개인생활에 할애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인권과 자유의 전통, 산업화로 인한 문화 황폐화에 대한 경계도 포함된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인들의 「쉬는 병」은 프랑스정부의 큰 고민이고 오랜 유럽의 자존심높은 대국이 급변하는 20세기 말에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세계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다 도시<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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