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선행하자 아픈팔이 말끔히…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어느날 수원에서 인천행 전철을 탔다. 그 날 따라 행락인파가 많아 전철안이 만원인데 허름한 차림의 한 앞 못보는 이가 동냥 바구니를 들고 피리를 불며 동정을 구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내앞을 지날 때 호주머니에서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만지작거리다 그만 외면했다. 옆자리 사람들도 모두 못본 체했다. 그 소경이 다른 칸으로 건너가려는 순간 흑인 청년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천원짜리 한장을 잘 펴 올려놓았다. 그러자 옆의 아가씨도 천원을 올려놓고 살며시 웃는데 두 사람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평화스러워 보이는지 행복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철에서 내리면서부터 나는 한쪽 팔을 치켜올릴 수가 없었다. 밤에는 어찌나 아픈지 끙끙 앓는 소리까지 냈다. 이튿날 병원에 가 진찰을 받으니 오십견인데 50고개를 넘자면 견비통이 흔히 찾아온다는 의사의 얘기였다. 이제 50대에 들어서는 나이지만 건강 하나는 걱정하지 않고 지내왔다. 웬만큼 힘도 쓸 줄 알고 팔힘 깨나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80㎏들이 쌀가마를 어깨에 메고 아파트 5층 계단을 쿵쿵 뛰어 올라가면 통로 아주머니들이 쌀가게 주인으로 착각하기 일쑤였다. 매일 뜨거운 찜질 자외선 전기자극의 물리치료를 받고 운동을 조심스럽게 반복했지만 팔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내가 너무 신경 쓰지말라고 해 하루하루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날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장골목길을 지나는데 팔다리가 없어 배로 기어다니면서 동냥을 구하는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행인들은 못본 체 지나치기만 했다. 순간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 동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왠지 남이 볼까 쑥스러운 마음에 얼른 시장골목을 빠져 나왔다. 급히 걷느라 나도 모르게 팔을 휘적휘적 젓게 되었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상하여 일부러 팔을 위쪽으로 들어올려 보아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 뒤 거짓말같이 통증이 씻은 듯이 가셔 나는 오랜만에 다시 강한 팔로 되돌아 왔다. 양 주 석(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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