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9월 8일 18시 0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선수촌 고참 선수들이 가장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빨래를 둘러싼 애환. 87년 태릉선수촌에 처음 입촌했던 박장순 코치는 당시 일과를 끝내고 ‘해산’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람소리를 내며 기숙사로 내달려야 했다. 2대뿐인 세탁기를 선점하지 못하면 그 날은 자신의 빨래는 물론 선배들 몫까지 밤새 손으로 빨아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기 때문.
또 당시에는 한 방에 4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사용해 운동이 끝나면 방이 온통 빨래천지로 변해 발디딜 틈도 없었다.
선수들이 이런 고통에서 해방된 것은 96년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선수숙소가 문을 열면서 방이 2인1실로 바뀌고 각 층마다 대규모 세탁실과 건조실,휴게실이 마련된 뒤부터다.
신관숙소 완공이전 선수들의 고충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 층에 한곳뿐인 화장실을 선점하기 위해 선후배 선수들간에도 눈치싸움이 치열했고 야간 오락거리라곤 숙소 1층 휴게실에 단 1대의 TV밖에 없었다. 또 숙소부족으로 지금의 체육과학연구원 자리에 숙소를 배정받았던 수영등 일부 종목 선수들은 겨울이면 살을 애는 추위에 식당까지 이동할 의욕을 잃고 아예 식사를 건너뛰기가 일쑤였을 정도.
하지만 지금은 선수촌내에 PC방과 게임방은 물론 노래방까지 갖춰져 있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의 방에 컴퓨터와 TV,게임기등을 비치해 하드웨어면에서는 선수들이 부족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발전했다.
대한체육회는 올해말에 250실 규모의 새로운 숙소를 완공할 예정이어서 시설환경은 더욱 더 좋아질 전망.
하지만 시설이 좋아진 만큼 선수들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정이 사라졌다.
예전에 4명씩 방을 사용할때는 서로 종목이 다른 선수들끼리 같은 방을 사용해 종목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눴고 밤이면 TV앞에 20-30여명씩 모이는 등 가족같은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몇 달을 같이 생활해도 끝내 서로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만큼태릉선수촌도 개인주의풍조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