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프로야구 파동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6분


미국 프로야구에서 선수노조가 출범한 것은 1956년이었다. 첫 프로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1869년에 탄생했으니 그로부터 90년 가까이 지난 뒤다. 그러나 선수들이 처음 집단행동을 벌인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구단이 선수에 대한 모든 권한을 쥐는 불평등 조항을 없애라며 벌인 1885년의 투쟁이 그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구단을 뛰쳐나와 별도 리그를 만들었지만 흥행 실패로 1년 만에 백기를 들었고 그 후로는 감히 구단에 맞서지 못했다. 노조 출범이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출범 후에도 구단 눈치만 살피던 선수노조는 변호사인 마빈 밀러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힘을 얻었다. 선수연금제도 협상이 결렬되자 1972년 미국 스포츠 사상 처음 전면 파업에 들어가 구단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파업기간 중 선수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훗날 투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푼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별 볼일 없던 선수 연봉이 오늘날 천정부지로 뛴 것은 이 사건 이후였다.

▷이 해를 포함해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된 것은 모두 5차례였다. 1994년에는 연봉상한제 도입을 둘러싼 대결로 파업이 232일이나 이어지는 바람에 사상 처음 월드시리즈까지 무산됐다. 이 한해 동안 관중 감소가 2025만명, 미국 경제 손실 추정액이 수천억달러에 이르렀다는 얘기고 보면 후유증이 자못 심각했던 셈이다. 이 해 처음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朴贊浩)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해 ‘무늬만 메이저리거’ 소리를 들었던 것도 파업 때문이었다.

▷내일 시작하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우리 프로야구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선수협의회가 ‘외국인 선수 기용에 관한 합의를 구단 측이 일방적으로 깼다’며 경기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년여 진통 끝에 올해 초 출범한 선수협의회는 결성 문제를 놓고 가뜩이나 구단 측과 감정이 나빴던 터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분명한 점은 팬이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구단이나 선수협의회 모두 7년 전 미국의 전철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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