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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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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후에도 구단 눈치만 살피던 선수노조는 변호사인 마빈 밀러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힘을 얻었다. 선수연금제도 협상이 결렬되자 1972년 미국 스포츠 사상 처음 전면 파업에 들어가 구단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파업기간 중 선수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훗날 투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푼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별 볼일 없던 선수 연봉이 오늘날 천정부지로 뛴 것은 이 사건 이후였다.
▷이 해를 포함해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된 것은 모두 5차례였다. 1994년에는 연봉상한제 도입을 둘러싼 대결로 파업이 232일이나 이어지는 바람에 사상 처음 월드시리즈까지 무산됐다. 이 한해 동안 관중 감소가 2025만명, 미국 경제 손실 추정액이 수천억달러에 이르렀다는 얘기고 보면 후유증이 자못 심각했던 셈이다. 이 해 처음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朴贊浩)가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해 ‘무늬만 메이저리거’ 소리를 들었던 것도 파업 때문이었다.
▷내일 시작하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우리 프로야구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선수협의회가 ‘외국인 선수 기용에 관한 합의를 구단 측이 일방적으로 깼다’며 경기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년여 진통 끝에 올해 초 출범한 선수협의회는 결성 문제를 놓고 가뜩이나 구단 측과 감정이 나빴던 터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분명한 점은 팬이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구단이나 선수협의회 모두 7년 전 미국의 전철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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