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기원/'수술 전문' 경제팀 만들라

  • 입력 2001년 3월 25일 19시 20분


개각이 임박했다. 사회분야와 외교안보팀을 맡고 있는 각료들이 주로 바뀔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개각이 새봄맞이 주부들의 가구 재배치와 별로 다를 게 있을지 의문이다. 자민련과 민국당 몫을 챙겨줘야 할 형편인데다 개각의 뚜렷한 철학과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속죄양으로 몇몇 인물을 문책하면서 민심수습이니 국정쇄신이니 하지 않을까 싶다.

▼대중요법으로 환부만 키워▼

특히 문제인 것은 개각 대상에서 경제팀이 슬쩍 비켜서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장관을 자주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또 작년 8월 발족 이후 현 경제팀이 나라경제를 잘 이끌어 왔다면 상을 줄 일이지 교체 운운해서는 안된다. 인물난이 심각해 마땅한 대타(代打)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팀의 행적을 보면 유임시켜도 괜찮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들은 부지런히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며 뭔가 열심히 하는 듯하다. 요즘 와서는 팀 내부에 삐걱거리는 것도 별로 없어 보이고 큰 파문을 일으킨 일도 없다. 한 마디로 무난한 팀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그냥 무난하게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가. 천민적 자본주의의 곪은 환부를 방치하고 마약과 영양제로 버티게만 해서는 결코 선진경제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현 경제팀은 수술 전문가라기보다는 대증요법 전문가들이다. 발족 이후 40조원의 공적 자금을 추가 조성키로 한 것 외에는 터지는 문제들을 그저 덮고 미루었을 뿐이다.

현대그룹의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만들어 낸 만기연장과 회사채 신속인수라는 요상한 제도로 문제를 틀어막지 않았는가. 금융권에 대해서도 부실을 깨끗이 정리하기보다는 지주회사니 통합이니 하면서 소리만 요란한 것도 마찬가지다. 생명보험사 상장이나 집중투표제 문제에서도 재계의 눈치만 살폈고, 국세청 앞 1인 시위가 계속되는 데도 못본 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로 4대 부문 개혁의 기본틀이 잡혔다고 자화자찬이다. 재벌개혁의 핵심인 부실기업 정리와 소유지배구조 개혁은 갈 길이 멀고, 금융권 부실 털어내기와 경영시스템 혁신도 지지부진한 상태고, 효율성과 공공성이 균형을 이룬 공공부문 구축은 터도 닦지 않았고, 생산적 노사관계의 발전은 싹이 노란데도 말이다.

개혁을 한다면서 일을 벌이다가 뒷감당을 못한 일부 부처에 비하면 현 경제팀은 가만 있으면 중간은 한다는 주의(主義)인 듯싶다. 오랜 관료생활에서 터득한 지혜이리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외부에서 수혈됐던 인사들이 대부분 정부를 떠남에 따라 경제팀의 이런 칼라는 더욱 짙어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자신들의 몸에 밴 구태의연한 개발독재식 패러다임으로 회귀했다. 현대 처리가 그렇고 탈세와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중단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런 식으로 일시적으로는 그런 대로 꾸려갈 수 있다. 또 괜히 일을 터트렸을 때의 자신들의 수습능력을 감안한 겸허한 자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IMF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현 경제팀이 애용하는 대증요법은 결국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게다가 대우차 매각이 실패하자 혼비백산했던 그런 위기관리 능력으로 미국경제의 추락과 같은 외부여건 악화에 제대로 대처하겠는가.

▼개혁 계속하려면 교체해야▼

고통스럽고 반발도 심한 개혁은 이제 그만하자고 판단한다면 현 경제팀으로도 좋다. 그래서 갈 때까지 가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잘못 되면 그 부담은 다음 정권이나 국민에게 떠넘기면 될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게 옳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정신차려야 한다. 내년에는 대선정국에 들어가므로 개혁의 기회는 올해 뿐이다.

개혁성과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로 일신하는 게 쉽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찾으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막아내고 유능한 손발을 갖춰줘야 한다. 그리하여 정부 리더십에 대한 불신 과 고통분담이 공평치 않은 데 대한 불만 과 구조개혁 부진 이 초래하고 있는 불안 과 불황 이라는 5불(不) 구조를 혁파해 보자. 그렇게 한다면 안정적 선진경제도 환상만은 아닐 것이다.

김기원(방송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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