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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채용 공고를 하고 막상 고용계약서를 쓸 때는 계약직 서류를 내미는 회사,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며 업무 태도를 지적하는 상사, 화장실도 5분 내에 다녀와야 하는 세무법인에서 일하다 쓰러진 고교 3학년 현장실습생…. 노무사인 저자는 일터의 각종 갑질을 나열하며 일과 사람에 대해 성찰한다. 괴롭힘에 시달리고 건강이 망가질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신음하면서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급여, 소속감 등 회사가 많은 걸 제공하는 데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뒷전으로 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다른 직장을 못 구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한몫한다. 갑질을 하는 사람이 떠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잘라 말한다. 이 모든 걸 방관한 회사 그 자체가 문제라고. 갑질을 당하면 자기 탓을 하지 말고 이의 제기를 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병원 치료를 받은 날로부터 3년이다. 막말하는 상사와 눈 마주치지 않기, 소리 지르는 상사에게 대답 안 하기, 성차별적 농담에 웃지 않기처럼 작게나마 항변하는 것도 방법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어떤지, 문제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퇴직급여 받는 방법, 임금 체불 대비법 등을 부록으로 담았지만 구체적인 지침서라기보다 직장과 사람의 관계, 일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로 느껴진다. 저자는 당부한다. 과도한 노동 끝에는 번아웃이 있기에 무너지기 전에 퇴사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오로지 자신만을 우선순위에 둘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이 순간도 번뇌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강력한 돌직구로 받아들일 것 같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녀와 곰 아저씨는 늘 함께한다. 자전거 타기, 달리기 경기, 햇살을 붙잡기 위해 언덕에 올라가기. 바다 밑 세상을 탐험하고 겨울이면 눈 속에서 신나게 썰매를 탄다. 매일 함께 잠든다. 어느 날, 소녀는 새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시소를 타기 시작한다. 소녀가 곰 아저씨를 잊은 건 아니다. 늘 생각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곰 아저씨를 품에 안는다. 어, 그런데…. 곰 아저씨가 예전과 다르다. 많이 작아졌다. 소녀가 훌쩍 자랐기 때문일까. 애착 인형인 곰 인형과 함께한 소녀의 어린 시절과 성장한 모습이 동화처럼 펼쳐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곁에 있는 애착 인형이 있는 아이라면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한순간 빠져들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있는 어른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데려와 찡하면서도 마음에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느낌을 선사한다. 보드라운 그림은 소중하고 아스라한 감정을 포근하게 더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유재연 작가(33)의 개인전 ‘Great to see you’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룩스에서 7월 2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과 같은 작품 ‘Great to see you’(사진)는 꽃을 든 소년이 새를 닮은 생명체와 마주하는 장면을 그렸다. 만남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소년은 무언가를 응시하며 혼자 앉아 있거나(‘Night Train’), 새 같은 생명체를 품에 꼭 안고 있다(‘Two in the wetland’). 숲속에서 소녀가 휴대전화 화면을 보는 모습을 동물들이 가만히 지켜본다(‘Screaming dreams’). 동화 속 장면처럼 느껴지는 작품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군가와 함께하기도 하지만 결국 혼자 생각하고 감내해야 하는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작가는 일과 쉼, 가정과 사회 등 우리 세계를 나누는 밤이라는 시간에 주목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무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집 ‘다보탑을 줍다’로 유명한 유안진 시인(80)은 요즘 작은 시 교실을 열고 있다. 학생들은 은행을 다니다가 은퇴한 이 등 3명. 코로나19로 카페에서 5명 이상 모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강료는 돌아가면서 찻값 내기. 그 이상 뭔가 하는 건 절대 금지다. 유 시인이 시를 가르치게 된 건 신부님의 아이디어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유 시인이 신부님에게 물었다. “저는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 줄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신부님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답했다. “클라라 자매님, 시를 가르쳐 주시면 어떨까요? 은퇴하신 분 중에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렇게 시 교실이 꾸려졌다. 수강생은 시를 쓴 후 4장씩 출력해 온다. 이름은 쓰지 않는다. 유 시인과 수강생들은 누가 쓴 건지 모른 채 시를 읽은 후 돌아가며 감상을 이야기한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서로 민망하지 않게 배려한 방식이다. 유 시인은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분들이어서 그런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를 쓴다”며 “때로 낯설기도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 신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내게도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덧붙였다. 강렬한 색상에 거친 듯 힘 있는 붓질로 동물, 풍경을 담는 사석원 화가(61)는 푸르메재단에 매년 작품을 기부하기로 했다. 앞서 그는 2016년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회화 ‘경복궁 향원정의 십장생’, ‘동물들의 합창’을 전달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무작정 찾아와 “아이들이 병원에 오는 걸 무서워한다.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게 시작이었다. 실제 긴장한 채 병원에 온 아이들은 호랑이 소 돼지 등을 유쾌하게 그린 ‘동물들의 합창’을 보면 얼굴이 밝아진다고 한다. 사 작가는 지난해 ‘노래하는 호랑이’ 회화와 동명의 조형물도 푸르메재단에 각각 1점씩 전달했다. 그가 해마다 기부하는 작품들은 장애어린이 재활 치료와 장애청년 자립 사업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시인과 사 작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누군가는 빼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나눌 수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작은 능력을 자신에게서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나서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실천하려는 의지다. 유 시인과 사 작가를 보며 생각한다. 이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덜 팍팍해지는 게 아닐까. 기자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어느 날 슬픔이 찾아오자 나는 슬픔이를 위한 집을 짓는다. 이곳에서 슬픔이는 원하는 만큼 커질 수 있고 큰소리로 떠들어도 된다. 창문을 열어 새소리를 듣거나 커튼을 닫고 깜깜하게 지낼 수 있다. 뭐든 할 수 있고 뭘 느껴도 괜찮다. 집은 눈보라가 몰아쳐도 끄덕 없이 튼튼하고 정원에서는 장미가 핀다. 나는 슬픔이를 찾아간다. 가끔, 어쩌면 매일, 필요하다면 매시간…. 서로 껴안고 울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기만 할지도 모른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슬픔과 함께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시를 읊듯 나직하게 들려준다. 동그란 아이처럼 생긴 슬픔이, 창이 있는 자그마한 집, 계절에 따른 정원의 변화를 담은 서정적인 그림은 마음을 다독인다. 슬픔을 꾹꾹 눌러야만 했던 경험이 있다면, 만약 지금 그러고 있다면 울컥 하는 감정과 함께 뭔가 스르르 풀어지는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맑고 편안하다. 즐거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밝은 색채로 정물, 인물, 풍경을 그린 류제비 작가(50)의 그림은 그렇다. 서울 마포구 ‘스페이스 자모’에서 20일까지 열리고 있는 류 작가의 개인전 ‘별과 바람 그리고 소년’에서 그의 회화 26점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서 그룹전을 열었고 수차례 개인전을 개최한 류 작가는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류 작가는 미술에서 가장 기본으로 여기는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에 집중해 작업하고 있다. 4일 만난 류 작가는 “늘 보던 화병에 담긴 꽃이 어느 날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강렬한 순간을 경험했다.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 후 주변의 대상 하나하나가 신비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별을 보는 소년’이다. 꿈꾸는 것 같은 소년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별, 나무가 비친다. 자연 속에서 이를 응시하고 있는 것. ‘생각하는 소년’ 속 소년은 눈을 감고 있는데 유독 귀가 크다. 작가는 “눈을 감으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표현했다”고 말했다. ‘바람이 시작되는 곳’은 초록빛 언덕에 하얀 집이 자그마하게 서 있다. 같은 제목의 또 다른 그림에는 오렌지색 땅 위에 알록달록한 집들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모여 있다.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상상 속 풍경을 그린 것. 파란색 화병은 녹색 그림자를, 베이지색 화병은 보라색 그림자를 드리워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작품은 대상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밝은 색감으로 표현해 동화 속 세상 같은 느낌을 준다. 특유의 쨍한 색을 내기 위해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칠하는 작업을 스무 번 이상 한다. 그림 속 화병도 직접 도자기로 빚고 구워내 색칠했다. 원하는 모양과 색깔을 구현해내기 위해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작업실에서 온종일 그림을 그린다. 작업 과정 자체가 수행과 비슷하다고 하자 그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종교는 없지만 명상하듯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슬픔과 기쁨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빛깔이 순식간에 달라지니까요.” 그의 작품을 본 이들은 “위안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류 작가는 작업할 때 대략적인 구도는 생각하지만 색깔이나 배열은 감정에 따라 그때그때 결정한다. 최종적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의 성격이 작품에 투영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류병학 큐레이터는 “류 작가는 엉뚱하고 발랄하다.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맑다. 그 심성이 작품에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 작가의 이름은 시인인 어머니가 제비와 관련된 태몽을 꾸고 지은 본명이다. 그는 서명도 한자 ‘제비 을(‘)’을 쓴다. 어릴 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너무 많이 받아 여러 차례 개명을 시도했지만 결국 바꾸지 못했단다. 그는 “작가가 되고 보니 개성 있는 이름인 데다 많은 분들이 쉽게 기억해 주셔서 좋다. 어머니가 먼 미래를 내다보신 것 같다”며 웃었다. 수∼일요일 오후 1∼6시. 무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사단법인 국민독서문화진흥회(회장 김을호)와 경기 시흥시(시장 임병택)는 제30회 대통령상타기 전국고전읽기백일장대회를 10월 16일 공동 주최한다. 올해 30회를 맞는 백일장대회는 우리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읽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했다. 초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신청서와 함께 예선 원고를 진흥회 사무실(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269, 601호)로 9월 10일까지(우체국 소인 기준) 보내면 된다. 예선 결과는 9월 28일 진흥회 홈페이지에서 발표한다. 본선은 10월 16일 열린다. 우수 개인과 지도교사 및 학교에는 대통령상(상금 200만 원)을 비롯해 국무총리상(100만 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50만원) 등을 수여한다. 진흥회는 제18회 전국청소년독서감상문발표대회, 제4회 아동·청소년가족사랑독서감상문대회도 개최한다. 대회 관련 자세한 내용은 진흥회로 문의하면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책 읽는 재미에 빠진 책방 주인 폰초. 마음에 드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도 긋고 느낀 점까지 쓴다. 이런 책은 팔 수 없는데…. 한 소녀는 폰초가 표시를 잔뜩 해 놓은 책 한 권을 꺼낸다. 소녀는 “폰초가 즐거워한 부분을 알 수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라고 한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책방으로 몰려와 폰초가 표시해 둔 책을 찾는다. 어느 날 책방에 큰 불이 나 책이 모두 타버리는데…. 책의 좋아하는 부분에 표시하고 느낌을 쓰는 게 낙서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 되는 것이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책을 잃은 폰초에게 마을 사람들이 책을 한 아름 갖고 와, 읽고 표시를 한 ‘폰초의 책’을 팔라는 모습이 따스하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사실감 넘치는 그림도 눈길을 끈다. 한글과 영어가 함께 표기돼 동화를 영어로도 익힐 수 있다. 작가는 현재 상영 중인 애니메이션 ‘굴뚝 마을의 푸펠’의 원작인 동명 동화를 썼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유롭게 유영하듯 선과 색이 일렁인다. 아이가 그린 듯 천진해 보이기도 한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된 미국 유명 작가 엘리엇 헌들리(46)가 그린 드로잉은 한없는 자유분방함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구 팔판길 백아트서울에서 19일까지 열리고 있는 헌들리의 개인전 ‘종이와 대화하면서’는 헌들리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그린 드로잉 18점을 선보인다. 캔버스 콜라주 작품 2점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아시아 첫 전시다. 헌들리는 캔버스에 사진, 신문기사, 천 조각, 끈 등을 붙이고 핀을 꽂아 색칠하는 콜라주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다. 낮에는 캔버스 콜라주에 몰입하고 저녁에는 일기를 쓰듯 드로잉을 한다. 그는 드로잉을 할 때 눈을 감은 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본 윤곽은 물론이고 작품의 크기조차 정하지 않고 그저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맡긴다. 종이가 부족하면 추가로 종이를 덧대어 붙인 뒤 그린다. 헌들리는 “드로잉은 예술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의 본질이다. 드로잉 수집이야말로 가장 지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드로잉은 그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종의 명상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드로잉 작품 제목을 숫자로 표기했다.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5.12.20.2’(2020년)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노랑, 빨강, 초록색 물감으로 칠한 뒤 검은색으로 곡선의 형상을 그렸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어디인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각종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웃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 같은 ‘26.12.19.1’(2019년)은 얼핏 보면 아이가 그린 듯 해맑다. 밝은 기운과 에너지가 전해진다. ‘8.12.19.1’(2019년)은 노랑 파랑 빨강 주황색이 질주하듯 내달린다. 검은 테두리의 노란색 동그란 무늬들을 한가득 배치해 생각의 조각을 핀으로 눌러 고정한 듯한 느낌을 준다. 가는 붓으로 선을 정교하게 그려 수묵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도 여럿이다. 캔버스 콜라주 2점은 미술관 1층에서 관객을 맞는다. 가로 219cm, 세로 185cm의 ‘Babushka’(2021년)는 캔버스에 작은 사진, 천 등을 붙이고 수많은 핀을 꽂아 색칠한 작품이다. 손톱보다 작은 각종 재료를 하나하나 붙여 커다란 캔버스를 채웠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 수행의 결과물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내면과 무의식, 사유의 세계를 뚜렷한 개성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흥미로움과 신선함을 함께 선사한다. 무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야구 선수 루이. 홈런을 치고 싶지만 오늘 시합에서 또 졌다.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에 갔다 고교 야구부 주전이었던 센 형을 만난다. 센은 루이의 시합을 봤다고 한다. 홈런을 치는 법과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센도 시합에서는 홈런을 쳐 보지 못했다며 언젠가 홈런을 치려 애쓴다고 고백한다. 루이는 느린 동작으로 배팅 연습을 하는 센을 보고 집으로 온다. 간절히 뭔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야구를 통해 찬찬히 짚는다. 루이는 엄마에게서 센이 일 년 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재활훈련을 열심히 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센은 루이의 시합을 일부러 보러 온 거였다. 포기부터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는 것, 내 안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기후변화, 팬데믹, 전쟁, 가난…. 각종 사회 문제를 치유하고 보듬는 예술의 역할을 모색하는 ‘2021 세계 문화예술교육 주간’이 24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10회를 맞는 이번 행사는 ‘사회 위기 속 참여적 예술교육의 역할’을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공동으로 개최한다. 스코틀랜드 연출가인 벤 트위스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야기했다. 오페라, 연극 연출가로 유명한 피터 셀러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전쟁, 가난 등 위기에서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제주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가수 요조는 환경 보호를 위한 일상 속 작은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유네스코 유니트윈 국제 학술대회’도 24∼26일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유니트윈은 1992년부터 134개국 850개 대학 및 고등교육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연구협력 사업이다. 2017년에는 유네스코 유니트윈의 국제학술대회인 ‘문화 다양성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예술교육 연구’가 창립돼 13개국 대학 및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위기의 시대, 행동하는 예술교육’을 주제로 독일 호주 싱가포르 케냐 등 9개국 문화예술교육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연 속에서 예술 작업을 진행하고 버려진 물건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업사이클 아트 사례 등을 발표했다. 올해 유네스코 유니트윈 국제학술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박신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사진)은 “예술은 생태계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 간에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대, 온라인 교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참가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이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작업하는 ‘아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전자음악 무용 시각예술 미디어아트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이 사람과 동식물, 사물 간의 상호작용을 개성 있는 시각으로 탐구한다. 박신의 조직위원장은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예술인 ‘소셜 아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투병하는 이들에게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자아 존중감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예술가는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찾아가 많은 이들을 만나고 교감함으로써 예술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수도권에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 및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선보이는 미술관은 접근성을 고려해 수도권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구체적인 미술관 신설 계획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과열되자 문체부는 미술관 설립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미술계의 요구대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새로 지을지, 이건희 컬렉션만을 위한 별도 미술관을 세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술계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를 지난달 발족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문화공원 부지나 정부서울청사에 국립근대미술관을 짓고 ‘이병철실’과 ‘이건희실’을 두자고 제안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수도권에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 및 미술품 2만 3000여점을 선보이는 미술관은 접근성을 고려해 수도권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구체적인 미술관 신설 계획은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과열되자 문체부는 미술관 설립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미술계의 요구대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새로 지을지, 이건희 컬렉션만을 위한 별도 미술관을 세울 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술계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를 지난달 발족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문화공원 부지나 정부서울청사에 국립근대미술관을 짓고 ‘이병철실’과 ‘이건희실’을 두자고 제안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엄마야!” 영화관 매표소 여성 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뒤돌아선 채 혼자 일하던 그가 몸을 돌렸을 때 기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것. 그의 반응에 기자도 덩달아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해당 층의 카페는 문을 닫았고 천장 전등도 모두 꺼져 깜깜했다. 매표소만 덩그러니 불이 켜진 상태였다. 사람이라곤 직원과 기자 둘뿐이었다. 지난달 어느 주말, 영화 ‘자산어보’를 보려고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영화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예매를 하지 않아 표를 사려다 의도치 않게 직원을 놀라게 만들었다. 1층부터 층층이 가게에 불이 꺼져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영화관이 운영을 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긴 했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니 관객은 기자를 포함해 6, 7명 정도였다. 영화는 좋았다.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의 집념, 민초의 애환이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한데 영화를 보려면 담력 테스트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 문화계 종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난달 영화 관객은 256만 명으로, 지난해 4월(97만 명)보다 163% 늘었다. 하지만 2019년 4월(1334만 명), 2018년 4월(1407만 명)에 비하면 20%가 채 안 된다. 극장들은 직원을 줄이고 임대 기간이 만료된 상영관은 문을 닫으며 긴축에 들어간 지 오래다. 공연, 전시는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관객이 몰려 그나마 다행이다. 이달 2일 서울 공연을 마친 뮤지컬 ‘위키드’는 모든 회차가 매진됐다. 현재 진행 중인 부산 공연도 매진된 회차가 많다. ‘시카고’도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16일 막을 내린 ‘맨 오브 라만차’ 역시 조승우가 출연하는 공연은 즉시 매진됐고 홍광호, 류정한이 나오는 회차 역시 매진이거나 대부분이 판매됐다. 띄어 앉기로 매진이라 해도 전체 좌석의 60∼70%만 판매돼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제작사들은 이 정도만 해도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함성을 지르면 안 되고 박수만 보낼 수 있지만 공연을 즐기는 열기는 더 뜨겁다. ‘시카고’는 막이 내리고 밴드가 연주를 하면 이전에는 퇴장 음악으로 여겨 관객들이 자리를 떴지만 올해는 대다수가 남아 연주를 듣는다고 한다. 피카소의 회화, 도예, 조각 등 작품 110여 점으로 구성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는 하루 3000여 명이 몰리고 있다. 전시기획사는 “코로나19로 인해 관람객이 올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일부 인기작 위주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억눌린 감정을 문화생활을 통해 푸는 현상은 반갑다. ‘맨 오브 라만차’ 막공(마지막 공연) 때 여주인공 알돈자를 연기한 김지현은 “무대에 선 저희들, 외롭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말이 찡하게 다가왔다. 답답한 이 시기, 문화를 통해 교감하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조금은 덜 고되길, 조금 덜 외롭길.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집에서 살 거야.” 아빠가 기뻐하며 말한다. 엄마도 무척 좋아한다. 두 분은 내게 가방을 건네며 물건을 담으라고 한다. 정말 사랑하는 것만 가져갈 수 있다며. 어항,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나무 의자, 마당의 배나무, 함께 노래 부르는 학교 버스 기사 아저씨, 항상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까지. 다들 너무나 소중하지만 가방에 담을 수 없다. 슬픈 마음으로 바닷가로 향하는데…. 소녀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러다 바다를 보며 소녀가 떠올린 생각에 탄성이 나온다. 바다는 어디에나 있기에 새로운 곳에서 날마다 바다를 찾아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리는 것. 바다를 통해 두 나라는 이어져 있고, 소녀가 기억하는 한 사랑하는 존재들은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낯선 곳으로 떠나도 아끼는 이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잔잔하고 지혜롭게 들려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 놀이터에서 나를 밀어 넘어뜨린 녀석. 알고 보니 녀석의 엄마는 일하느라 집에 거의 없고, 다쳐서 집에 있는 아빠는 술만 취하면 녀석을 때린다. 나는 엄마랑 산다. 이혼 후 엄마는 낮에도 계속 자고 가끔 울기도 한다. 집에 있고 싶지 않다.(‘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2. 우리 집에는 식탁, 욕조가 있다. 예전 집에서는 작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고, 욕조도 없었다. 난 “우리 집 진짜 좋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는 “거긴 임대 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라고 쏘아붙이고는 학원으로 간다.(‘우리 집은’) 가정 폭력, 임대주택 차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른바 ‘다크 그림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 소년사진신문사가 글을 쓴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다봄)는 지난달 나왔고, 조원희 작가의 ‘우리 집은’(이야기꽃)은 올해 2월 출간됐다. 산업재해, 부부 싸움 등 주제도 다양하다.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가 지은 ‘엄마, 달려요’(시금치)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가장의 남은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엄마도 아이도 마음이 아프지만 같이 밥을 먹고 바람을 쐬며 일상을 이어간다. ‘혼나기 싫어요!’(나무말미)에서는 부부 싸움을 한 엄마 아빠가 아이를 다그치고 혼낸다. 아이는 부모가 싸우는 소리에 울며 잠들었다. 알코올의존증인 아빠가 엄마와 싸우는 날이면 집 밖으로 나와 달을 보는 아이를 그린 ‘달 밝은 밤’(창비),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는 아빠와 사는 힘겨운 삶을 그린 ‘아빠의 술친구’(씨드북)도 있다. 김장성 이야기꽃 대표는 “어두운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은 판매가 잘 되지는 않지만 감추기보다는 밖으로 끄집어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은’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루면서도 집은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혼나기 싫어요!’의 글을 쓴 김세실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 뒤에 언제나 두 분의 감정을 살피며 느껴야 했던 불안감과 방향 없는 분노를 떠올리며 썼다”면서 “세상 모든 어른이 어린이를, 부모가 자녀를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출판계는 그림책의 주제가 확장되면서 ‘다크 그림책’의 종류는 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자녀에게 권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우울한 현실을 미리 알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전문가들은 어두운 얘기라고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문제 해결 방법이 제시된 책을 골라 부모가 내용을 숙지한 뒤 아이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김혜진 그림책보다연구소장은 “상처 받은 아이를 돕고 지지해 주는 인물이 등장하거나 문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 책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도 찬찬히 내용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돕는 상담사가 나오는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산재 피해자 가족이 마음을 털어놓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내용을 맨 뒤에 담은 ‘엄마, 달려요’가 해결책을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때가 되면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게 되고 다가올 것은 다가오게 된다.’ 부산 대운사 주지이자 문화예술사단법인 ‘쿠무다’ 이사장인 주석(珠昔) 스님(사진)은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소회를 밝히며 자신의 저서 ‘오늘의 발끝을 내려다본다’의 일부를 인용했다. “밤새 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내렸습니다. 그리곤 화창…. 이렇게 화창해질 것을 밤새 그리 퍼부었을까 하다가 책 속에 써 둔 그 부분이 생각나더군요.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말이지요. 그것이 붓다께서 2565년 전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아픔에도 머물지 말고 기쁨에도 딱! 적당히 머물다 다음 감정으로 건너가야 되겠지요.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많이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주석 스님은 이 시대의 포교 키워드를 문화로 삼고 2013년 12월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인근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를 열었다. 스님은 이곳을 통해 예술인들에게는 문화예술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을 뜻하는 쿠무다는 종교와 예술, 문화, 먹을거리가 어우러지는 소통의 공간이다. 송정의 명소로 빠르게 자리 잡아 정기 문화공연과 북 콘서트,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 문화 강좌 등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2019년에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기획해 병원, 요양원, 경찰서 등 나눔과 사랑이 필요한 문화 사각지대를 직접 찾아가 공연을 펼치며 힐링을 선사했다. 쿠무다는 더 넓은 공간에서 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올 8월 개관 예정인 ‘쿠무다 명상빌리지’는 송정 해변가에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는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건립된다. △지하 1층에 문화예술 공연장(250석 규모) △1층 로비 및 주차시설 △2층 카페 쿠무다 아트갤러리 △3, 4층 퓨전 레스토랑과 요식 교육관 △5층 문화예술 교류 공간과 인터넷 방송국 △6∼8층 컬처스테이 호스텔 △옥상 명상공간과 휴게정원이 각각 들어선다. 쿠무다는 기존 문화예술 프로그램뿐 아니라 해외 문화예술인 초청 강연도 할 예정이다. 찾아가는 힐링음악회, 문화예술 장학생과 프로그램 지원, 갤러리 대관 사업도 진행한다. 쿠무다는 명상빌리지를 일반인들이 문화예술의 에너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문화 힐링 브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부산 지역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 문화복지를 키우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린 호민이가 누워 있어 그대로 (가장자리를) 연필로 본 뜬 다음 모양에 맞춰 쇼핑백을 붙여 ‘쇼핑맨’을 만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도운 거죠.”(주재환 작가) “어릴 때 아버지 작품은 재미있다고만 여겼어요. 만화가가 돼 보니 사회적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참 잘 풀어내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주호민 작가) ‘신과 함께’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40)과 아버지인 민중미술가 주재환(81)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7일 열린 협업 전시 ‘호민과 재환’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父子)가 작업을 함께한 건 처음이다. 주호민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신기하면서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중간에 도망가려고 했는데 학예사에게 잡혀 열심히 하게 됐다”며 웃었다. 18일 시작하는 전시는 회화, 설치작품, 영상, 웹툰 등 130여 점으로 구성된다.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7년)를 만화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년)를 패러디했다. ‘계단에서…’는 가로 220cm, 세로 740cm로 사람들은 오줌이 내려오는 계단에서 서로 끌어주고 때로 프로펠러도 타며 위로 올라가려 한다. 주호민은 “오줌 줄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억압적인 힘을 의미한다. 제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이런 구조를 깨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빈 음료수병, 캔을 빨래건조대에 매단 주재환의 설치작품 ‘물 vs 물의 사생아들’은 환경 오염으로 물을 포함해 자연 그대로가 아닌 병에 담긴 것만 마실 수 있는 현실을 비틀었다. 주재환은 “호민이가 음료수를 사왔고 마신 것도 많다”고 했다. 호랑이 울음을 반복 재생하는 ‘호랑이 소리’는 주재환이 ‘창경원’ 야경꾼으로 일하던 당시 밤에 들었던 인상적인 소리를 표현했다. 웹툰 ‘신과 함께’ ‘무한동력’의 주요 장면과 스케치, 콘티를 비롯해 주재환의 회화 ‘짜장면 배달’, 콜라주 ‘아침 햇살’ 등도 배치했다. 저울 위에 회화작품을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미술작품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해 비판하고 죽어서야 봉안당의 좋은 위치인 소위 ‘로열층’에 자리할 수 있는 현실 등 사회의 부조리와 그늘을 예리하게 짚으면서도 발랄하게 요리하는 부자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작품 가운데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상형 월드컵’식 대화를 담은 영상은 특히 웃음을 자아낸다. ‘훔친 수건’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인 수건으로 만든 작품에 대해 주호민이 “수건은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으면 주재환은 “네 엄마가 구해 왔어. 수건이 자주 없어지니까 저렇게 써 놓은 목욕탕이 있대”라고 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 부자의 작품들을 둘러보면 눈은 즐겁고 기분은 유쾌해진다. 생각할 거리도 남는다. 전시장 입구에는 노란색 동그란 얼굴의 주호민과 모자를 쓴 주재환의 얼굴 그림이 각각 걸려 있다. “예전에 그렸던 거예요. 다시 보니 호민이와 닮아 호민이 초상으로 정했죠.”(주재환 작가) “아, 그렇게 해야 재미있게 나오는데…. 마음먹고 그렸더니 재미없어졌어요.”(주호민 작가) 허탈해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여유롭게 껄껄 웃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도예가, 평화주의자, 동물 애호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여러 면모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5000여 점 가운데 1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피카소 단일 작품 전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특별전 작품들의 추정가는 모두 2조 원가량 된다. 피카소는 버려진 재료로 작업하기를 즐겼다. 나무판, 마분지, 천, 끈을 붙이고 색칠한 부조 ‘기타와 배스병’은 현대 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보험가액이 800억 원으로, 이번 전시에서 보험가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꽃병, 물항아리, 접시 등 도예 작품도 눈길을 끈다. 피카소는 수천 점의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국내에서 볼 기회는 드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피카소의 도자기 110여 점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포도송이와 가위로 장식한 사각 접시’는 멀리서 보면 포도알이 볼록 튀어나온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손가락으로 오목하게 누른 뒤 색을 칠해 입체감을 자아낸 작품이다. 피카소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자기가 지닌 대중적 예술성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고발한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제작된 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정권의 사주를 받은 나치의 양민 학살을 비판한 ‘게르니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한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3대 반전 작품으로 꼽힌다. 다만 ‘한국…’에서 군인들의 국적을 나타낸 표식은 없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동물을 좋아해 개, 염소 등을 많이 키운 피카소는 도자기, 조각, 유화에도 비둘기, 고양이, 올빼미, 염소, 개를 자주 담았다. 임신한 염소 조각과 비둘기 도자기에서는 반전 그림과 함께 평화에 대한 피카소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 하면 떠오르는 입체파 유화들도 있다. 28세 연하의 연인 마리 테레즈를 그린 ‘마리 테레즈의 초상’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여인’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나란히 걸려 있다. 셋 다 1937년에 그렸지만 ‘마리…’는 화사한 색상으로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반면 ‘팔짱을…’은 우울한 분위기에 초록색과 파란색 줄무늬를 사용해 감옥에 갇힌 듯하다. ‘창문…’은 슬픈 얼굴의 백발노인으로 그려 작품별로 마리 테레즈에 대한 피카소의 감정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피카소가 사랑한 여인 가운데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그린 작품도 있다. 러시아 발레리나인 첫 부인 올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들을 밝고 당당하게 그린 ‘피에로 복장의 폴’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1일 개막한 뒤 하루 3000명 넘는 관람객이 몰려 전시장은 매우 북적인다. 평일에는 전시장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춰 가거나, 오후 5시 이후에 방문하면 비교적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오후 7시 폐관). 주말, 공휴일에는 개관 전 길게 줄 선 이가 많아 오후 5시 넘어 가는 게 좋다. 8월 29일까지. 1만1000∼2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독재자, 폭군, 고문 가해자…. 그들 대부분의 뒤에 회초리나 채찍을 휘두르는 양육자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을 쓴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평화를 위해 먼저 가정에서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한다. 1978년 그가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을 받는 자리에서 발표한 연설문 ‘폭력에 반대합니다’ 전문을 담았다. 그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다며 일화를 소개한다. 엄마가 말썽 피운 아들에게 회초리를 구해 오라고 하자 아이는 돌아와 울며 말한다. “회초리는 못 찾았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저한테 던질 수 있는 돌멩이를 구해 왔어요.” 엄마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어 하니까 돌멩이도 괜찮을 거라 여긴 것.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돌멩이를 부엌 선반에 올려 둔다. 이는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린드그렌은 부엌 선반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올려 두자고 제안한다. 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아동 체벌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이 연설은 가정에서 어린이들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는 지금 한국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