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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손효림]질주하는 당신, 무엇을 향하는가

입력 2022-02-07 03:00업데이트 2022-02-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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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향한 리차드3세, 자연 그린 데이비드 호크니
잠깐 멈춰 서 숨 고른 뒤 삶의 이면 바라보라 말해
손효림 문화부장
굽은 등, 절름거리는 다리, 뒤틀린 손을 지닌 사내. 조카들을 죽이고 정적을 숙청하며 왕좌에 올랐다. 왕권 유지에 조금이라도 걸림이 되는 존재는 가차 없이 제거한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리차드 3세’에서 배우 황정민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 리차드 3세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는 폭풍처럼 내달린다.

4년 만에 같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황정민은 피를 뿌리며 권력을 거머쥐는 리차드를 호소력 짙게 풀어낸다.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불구라는 이유로 왕좌의 언저리조차 다가갈 수 없는 현실에 냉소를 던진 후 치밀한 계획으로 직접 왕좌에 오르는 리차드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서재형 연출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왕관을 꿈꾼다. 리차드를 통해 왕관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렸던 우리의 모습을, 또 멈출 수 없이 내달리게 내모는 우리 사회를 반추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악다구니를 하며 쉼 없이 달리는 이들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더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잠깐 멈춰서 보라고 말하는 작품들에 눈길이 간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소시민의 삶을 정겨우면서도 웃음이 쿡쿡 나게 그린 김호연 작가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는 지친 이들이 나온다. 보험, 자동차, 의료기기 영업사원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게 일했지만 하루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소주에 컵라면, 삼각김밥까지 딱 5000원뿐인 40대 가장 ‘경만’이 그렇다. 아들의 악기와 레슨비 마련을 위해 뇌물을 받다 경찰에서 해직된 후 흥신소를 차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는 ‘곽’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편의점 직원 ‘독고’는 노숙자로 살다 알코올성 치매로 자기 이름마저 잊어버리게 된 인물로, 이들에게 투박하면서도 독특한 방법으로 위로를 건넨다. 독고가 노숙자가 된 구체적인 이유는 스포일러라 밝히진 못하지만 오직 성공만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 전원 지역에 작업실을 마련한 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많은 손님이 찾아오고 여러 행사에 참여하던 분주한 일상이 자연스레 멈췄다. 호크니는 미술비평가 마틴 게이퍼드와 함께 쓴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에서 노을 지는 하늘, 떨어지는 빗방울,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를 살펴보는 기쁨에 대해 밝혔다. “나무껍질에 비치는 빛의 잔물결을 볼 수 있는데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해가 서서히 지면서 나무 몸통에 햇살이 닿아 생겨난 것이죠. … 사과나무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아직 싹이 나지 않았지만 봉오리가 곧 움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모두 놀랍기만 합니다.”

호크니는 자연에서 느낀 경이로움을 화폭에 담고 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에서 나무가 가득한 야외 풍경을 그린 대작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2007년)가 떠올랐다. 가로 12.2m, 세로 4.6m의 이 작품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노르망디에서 눈을 반짝이며 자연 속 풍경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봉쇄된 천국’이라 부른 그곳에서 거장이 빚어낸 작품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리차드 3세’에서 반기를 든 이들에 의해 최후를 맞는 리차드의 마지막 외침은 처연하다. “나는 진군한다. 아니, 나는 진군해야만 한다.” 끝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나아가려고만 하는 이들의 마음을 은유하는 듯하다. 발버둥치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이 말은 그래서 더 묵직한 질문처럼 다가온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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