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손효림]성공한 이의 지나친 자기 확신, 毒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9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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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러브 레터’ 후속작 침몰
거장도 과신하면 실패 피할 수 없어

손효림 문화부장
손효림 문화부장
세계적인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75·영국)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이 25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후 서울로 올라와 7월 14일부터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조승우(43)가 처음으로 팬텀(유령) 역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다.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 후속작으로 만든 ‘러브 네버 다이즈(Love never dies)’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러브 네버 다이즈’는 2010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화려하게 공개됐지만 억지스러운 이야기와 기대에 못 미치는 음악으로 악평이 쏟아졌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천재적인 음악 실력을 지녔지만 흉측한 얼굴 탓에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에 숨어 살던 팬텀은 사랑하는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통해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깨닫고 사라진다.

‘러브 네버 다이즈’에서 팬텀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코니아일랜드에 놀이동산을 만들어 큰 부(富)를 거머쥐고, 돈에 쪼들리는 크리스틴 가족을 불러들인다. 전편에서 크리스틴과 사랑을 이룬 라울은 술과 도박에 빠진 찌질한 남편이 됐다. 게다가 크리스틴 아들의 생부가 실은 팬텀이란다! 이 대목에서 경악했다. 귀에 꽂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이 가득한 ‘오페라의 유령’에 비해 ‘러브 네버 다이즈’는 동명의 넘버 외에는 딱히 인상적인 곡을 찾기 어렵다. 침몰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영화 ‘러브 레터’(1995년)를 연출한 일본 이와이 슌지(岩井俊二·60) 감독이 “‘러브 레터2’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말한 ‘라스트 레터’(2021년)를 보는 동안 기자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두 아이의 엄마인 사서 유리는 고교 시절 첫사랑인 소설가 교시로를 우연히 만나 편지를 주고받는다. 교시로의 첫사랑은 유리의 언니 미사키로, 한 달 전 스스로 생을 끝냈다. ‘라스트 레터’는 세상을 떠난 첫사랑을 가슴 아프게 그리워하는 주인공에, 편지가 오가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등 ‘러브 레터’의 큰 틀을 그대로 따랐지만 ‘러브 레터’가 선사한 감동을 산산조각 냈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도, 가슴 떨리는 음악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맡아 전교생 앞에서 당차게 발표하던 미사키가 대학에 진학해 가짜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은 후 자신을 떠난 그를 기다리다 삶 자체를 놓아버리는 설정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미사키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소설 한 권을 낸 뒤 그녀만을 생각하며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고 홀로 사는 교시로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라스트 레터’가 국내 관객 1만 명을 겨우 넘기며 소리 없이 퇴장한 걸 보면 실망한 건 기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창작품이 성공할 확률은 낮다. 속편을 잘 만들기는 더욱 힘들다. 이를 감안해도 두 거장이 명작의 후속으로 만든 작품이 범작도 못 된 이유는 뭘까. 기자는 이들의 지나친 자기 확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웨버는 스스로를 팬텀과 동일시해, 크리스틴과 팬텀의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이뤄주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됐다. 이와이 역시 첫사랑을 풀어내는 자신의 감각을 과신한 것 같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경영권 싸움을 보며 두 작품이 떠오른 건 성공한 이들이 종종 범하는 패착 때문이다. 이수만 에스엠 전 총괄 프로듀서(71)는 K팝을 세계에 알린 개척자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공의 결과물만큼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는 믿음 역시 강할 것이다. 에스엠 경영권 분쟁의 원인을 이 전 총괄 개인의 문제로만 단순화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과도한 확신과 밀어붙이기가 에스엠 내부 갈등의 씨앗이 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성공할수록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의심 없는 질주는 치명적인 독(毒)이 될 수 있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성공한 이#지나친 자기확신#오페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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