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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부족한 과거 밝히는 용기, 타인 위한 것일 때 더 빛나 [광화문에서/손효림]

입력 2021-12-20 03:00업데이트 2021-12-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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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무지 신경을 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다.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소원을 들어주는 떡 이야기를 그린 동화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를 쓴 김리리 작가(47)의 학창 시절 모습이다. 지금까지 총 5권이 나온 이 시리즈의 누적 판매부수는 85만 권이 넘었다.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만복이네 떡집’은 올해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온라인 서점에 게시된 ‘만복이네 떡집’ 작가 소개는 그가 고교 2학년 성적표에 받은 글귀로 시작한다. 이런 작가 소개글은 처음 봤다. 웃음이 터졌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작가가 되려면 공부 잘하고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마음껏 꿈꿀 수 있다고요.”

아이들의 고민을 명랑하게 풀어내는 이 시리즈처럼 김 작가는 밝고 쾌활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각종 돈 버는 일을 하며 자랐으리라고는 짐작되지 않았다.

“5남매인데, 식구들이 하루 종일 오락기 조립 등을 해 7000원을 벌었어요. 낚싯바늘을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일은 어깨가 너무 아파 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는 공장에서 두 달 꼬박 일해 10만 원을 벌었고요.”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책을 읽으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참 재미있더라고요. ‘그래,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쓰자’고 결심했죠.”

매일 일기를 쓰고, 이야기도 자주 지어 써서 6학년 때 쓴 일기장이 15권이나 된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현실적인 목표일 정도로 삶이 고됐다. 1999년 등단해 작가가 되자 스스로 너무 놀랐단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지난 여름날’을 먼저 밝히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 가운데는 부족했던 과거를 털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난이 짙을수록 성공은 눈부시다. 한데 때론 현재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과거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김 작가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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